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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5일 1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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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1일. 마이크 뮤시나의 뉴욕 양키스 입단 기자 회견장.
뮤시나는 양키스와 6년간 8천8백만달러에 계약을 체결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10개월 후에 열리는 2001년 플레이오프에 대해 걱정을 했다.
뮤시나는 당시 양키스테이디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볼티모어에서 팀의 넘버1 투수로서 오래 활약을 했는데 올시즌 부터는 플레이오프에서 선발로 등판할 수 있을지가 걱정일 정도"라고 말을 했다. 그의 걱정은 사실 농담이 아니었다. 라저 클레멘스, 올랜도 허난데스, 앤디 페팃, 그리고 뮤시나로 이뤄진 양키스의 선발진은 역대 최강급이다.
리그 챔피언 결정전과 월드시리즈는 보통 4인 로테이션으로 가기 때문에 당연히 선발 기회를 부여 받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선 3인이 선발 등판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은 3명이 선발 기회를 부여 받게 된다.
따라서 뮤시나는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선발로 등판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실제 허난데스가 컨디션이 정상이었다면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허난데스는 그러나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제3선발 자리를 뮤시나에 내줬다.
2001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
양키스는 지난해 가까스로 제압 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다시 맞붙었다. 믿음직한 에이스 클레멘스는 1차전 경기중 부상을 당했고 양키스는 홈에서 1패를 안았다. 그리고 다음날 앤디 페팃이 등판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양키스는 홈경기에서 2연패를 기록하며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듯 했다.
클레멘스의 부상이 심각해 플레이오프의 사나이 '엘 두케' 허난데스가 4차전 선발로 내정된 상황에서 양키스를 구해낼 선수는 다름 아닌 뮤시나였다. 오클랜드에서 열린 3차전에서 뮤시나의 피칭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특유의 너클커브와 커브가 어슬레틱스 타자들을 농락했다. 뮤시나는 주무기인 커브, 너클커브 등을 투심, 포심 패스트볼과 적절히 섞어 던지며 어슬레틱스의 강타선을 7이닝동안 4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시리즈 내내 빈타에 시달리던 양키스에 꼭 필요한 쾌투 였다. 양키스는 특급 마무리 전문 마리아노 리베라가 남은 2이닝을 실점 없이 잘 막아내 1점차를 끝까지 잘 지켰고 1대0으로 승리를 거뒀다. 만약 양키스가 이번 시리즈를 승리한다면 MVP는 당연히 뮤시나의 몫일 것이다.
어슬레틱스는 먼저 2승을 이끌어 낸 후 홈으로 시리즈를 가져왔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던 팀이고 뮤시나는 모든 부담을 안고 마운드에 올랐던 상황에서 그의 호투는 '시리즈의 흐름'을 양키스로 가져가게 했다.
뮤시나의 너클 커브는 홈 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질 뿐만 아니라 왼손타자의 경우 바깥으로 휘기 때문에 좌타자들에게는 일종의 '마구'다. 여기에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던지는 '오버-더-탑' 커브의 낙차는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뮤시나는 93-94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지는데다 실밥 두 개를 잡고 던지는 투심 패스트볼은 싱커성이 있기 때문에 너클 커브-커브-투심-포심이 적절히 구사 되면 타자들이 안타를 때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바로 ALDS 3차전은 뮤시나의 이런 진가가 확실히 드러났다.
뮤시나와 양키스
뮤시나는 지난해 겨울 6년간 8천8백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뉴욕 양키스 구단에 입단했다.케빈 브라운의 1억5백만 달러 기록을 깰 것으로 보였던 뮤시나는 협상을 오래 끌어 양키스에 가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 서둘러서 계약을 진행시켰다.
양키스로 오기전 줄곧 볼티모어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그는 메이저리그 경력 10년 동안 147승81패, 방어율 3.53을 기록 했다. 양키스와 계약을 맺었을 때 많은 팬들은 "돈에 팔려 갔다"고 했지만 뮤시나는 돈 보다는 '챔피언십 링'에 목이 말랐다.
뮤시나가 양키스를 선택하게 된 것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돈이 주된 이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팀으로 가든 연평균 1천5백만달러는 거뜬히 받을 수 있었던 뮤시나는 양키스와 6년간 8천8백50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이는 연평균 1천4백75만달러인데 시장 가치 보다 적은 액수에 사인을 한 것이다.
뮤시나의 에이전트인 안 텔럼은 "좀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뮤시나가 양키스와 조속히 딜을 끝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며 돈을 쫓아간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뮤시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팀, 즉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를 수 있는 팀을 선택했고 또 양키스 선수, 감독, 고위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태도가 그의 마음을 바꿔 놓았다. 뮤시나가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을 때 그의 조용한 성격 때문에 뉴욕(양키스, 메츠)은 사실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양키스 조 토리 감독의 적극적인 권유가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전트 텔럼씨에 따르면 뮤시나는 거의 매일 양키스 선수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의 모든 관계자가 선수 영입에 적극성을 띄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양키스의 팀 분위기가 좋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한 마음으로 선수 영입을 시도한 것은 유래 없는 일이었다.
토리 감독은 "물론 우리만 좋은 선수를 많이 확보하는 것은 공평치 않은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뉴욕을 우승팀으로 이끌기를 원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다.
볼티모어의 투수 척 맥컬로이는 "무스(뮤시나의 애칭)를 잃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상처를 치유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애통해하기 까지 했다.
2001년 시즌에 8백만 달러, 2002년 시즌에 9백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뮤시나는 2003년에는 1천만달러를 돌파한다. 이때부터 연봉이 크게 뛰기 시작해 2004년에 1천4백만달러, 2005년과 06년에 1천7백만달러씩을 챙긴다. 2007년은 옵션 계약으로 해 양키스가 원하면 1천7백만달러를 원하지 않을 경우 1백50만달러의 해약금을 주게 된다.
위 계약 조건에는 '트레이드 불가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뮤시나는 양키스 선수로 은퇴하게 된다. 연평균 1천4백75만달러를 챙기게 되는 뮤시나는 브라운과 로저 클레멘스에 이어 투수 평균 연봉 랭킹 3위에 올랐다.
18승 이상을 네 시즌에서 기록한 뮤시나는 지난 시즌 11승15패를 기록했지만 이는 팀의 공격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뮤시나가 등판한 경기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 타자들이 올려준 점수는 평균 3.75점에 불과 했다. 이는 팀의 도움을 잘 받지 못하기로 유명한 페드로 마티네스(4.73) 보다도 훨씬 낮은 지원 사격 성적이었다.
뮤시나는 올시즌 방어율 3.15를 기록했고 17승11패로 양키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도왔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저 작 권 자: ICC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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