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서울의 中동포들 “책보며 향수 달래요”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31분


서울 구로구 가리봉시장 입구에서 500m 정도 펼쳐진 ‘신 차이나타운’. 구로공단과 가까운 이 곳에 4, 5년 전부터 ‘코리안 드림’을 꿈꾸면서 서울을 찾아온 조선족 동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막노동과 식당 종업원, 목욕탕 때밀이까지 ‘3D업종’을 전전하는 가리봉 조선족 동포들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아 ‘가리봉 조선족 거리’라고도 불리고 있다.

고향을 떠난 공허함을 달래려는 이들을 겨냥한 술집 노래방 여관 등 유흥업소들이 밀집한 이곳에 한 달전 조그만 책방이 등장, 조선족 동포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

‘호호(好好)’라는 상호를 내건 이 책방 주인 김영섭씨(60)는 11일 기자에게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해서…. 책도 보고 비디오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면 좋지 않겠어요”라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30평 남짓한 공간의 방에는 중국어로 된 무협 소설, 만화책, 각종 잡지 등 5000여권이 비치돼 있었다. 동시에 편안하게 앉아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는 휴식 공간도 있었다.

대부분 조선족 동포들로 채워지는 손님들은 하루 5000원만 내면 종일 이곳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다. 보너스로 1편의 공짜 비디오도 제공된다.

이들에게 ‘최고 인기 도서’는 단연 무협 만화. 화려한 액션과 적당한 로맨스가 곁들여진 무협류가 고단한 일상의 탈출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만화책이 주종을 이루지만 점차 중국 소설과 잡지의 비중을 높여 나갈 예정이다.

허름한 작업복에 낡은 배낭을 메고 이 책방에 들어선 한 남자는 “일 나가기 전 기분전환 삼아 자주 이 곳에 들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 밀입국하려던 중국인들이 집단 질식사하는 등 우울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일대 상가는 썰렁한 분위기다. 이 일대 중국인들과 조선족 동포들이 대부분 ‘불법체류’ 상태여서 단속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

조선족 정모씨(33)는 “이 책방은 불법 체류자들이 잠시나마 고향을 음미할 수 있는 훌륭한 문화공간”이라며 “쫓기느라 긴장되고 각박한 마음을 잠시나마 추스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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