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폭풍 저그' 홍진호 '빛나는 준우승'

  • 입력 2001년 9월 16일 19시 58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사격에서 은메달에 그친 강초현 선수는 티없이 환한 웃음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 국민들의 인기를 더 끌었다.

최근 막을 내린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명승부 끝에 3대2로 ‘테란의 황제’ 임요환(21)이 우승하며 대회 2연패했지만 정작 인기를 끈 것은 준우승을 한 ‘폭풍 저그’ 홍진호(20)였다.

대회전 게임 관계자나 게임 유저들 대부분이 임요환의 압승을 점쳤지만 홍진호가 폭풍처럼 상대를 몰아치며 한 때 2대1로 앞서 나가는 등 팬들을 열광시켰던 것. 우승보다 더 빛나는 준우승이라고나 할까.

△운명의 4차전〓홍진호가 2대 1로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4차전. ‘저그’가 ‘테란’을 상대로 한번도 승리를 따내지 못한 맵(Map)인 ‘라그나로크’에서의 경기여서 당연히 임요환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홍진호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연습 기간 동안 이 맵에서 10여명의 테란 고수와 겨뤄 한번도 진 적이 없는 필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초반엔 그의 계획대로 이뤄졌다. 게임을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자들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임요환은 이 전술을 알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병력을 모은 뒤 한꺼번에 치고 나와 전세를 뒤집었다. 홍진호는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실패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대회 전후〓그러나 홍진호가 가장 아쉬워한 것은 1차전이었다. “1차전이 치러지는 맵에서 무려 100판 이상을 연습했어요. 2, 3차전은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었거든요. 근데 손이 풀리지 않아 연습할 때처럼 방어를 튼튼히 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어요.”

이 결승전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1만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당초 홍진호의 불리를 점친 것도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해본 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많은 관중을 보니 떨리더라구요. 하지만 ‘폭풍 속에 드랍쉽(임요환 선수가 주특기로 쓰는 유닛) 사라지다’ 등 팬들이 마련해온 플랭카드 등을 보니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아쉽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루 15시간씩 연습한 것이 아깝기도 하고 다시 한번 겨루면 꼭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는 대회가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평소 소주 1병까지는 버티는데 3시간 이상 경기를 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술을 먹으니까 금방 취했나봐요. 전 울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나요.”

△홍진호는〓여드름 투성이인 얼굴, 똘망똘망한 눈빛.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술술 얘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감정 표현도 솔직하다. 애인 얘기가 나오자 “애인 구한다고 꼭 써주세요”하고 주문했다. 평소 절친하게 지내는 동갑내기 프로게이머 장진남이 애인 자랑하는 게 속상하다는 것.

대회가 끝난 날 그의 팬클럽에는 하룻만에 1000여명이 새로 가입했다. 요즘도 하루 200∼300명씩 회원이 불어나 현재 회원이 3600명 수준.

이번 대회로 홍진호는 4000∼5000만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초일류급 선수가 됐다.

군대문제 등 장기적인 계획이 궁금해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요환이 형의 대회 3연패는 막아야겠죠.”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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