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호표/상징과 심장에 대한 테러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37분


미국 심장부의 테러 참사 후 서울의 한 고교 2학년생 상당수가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예외 없이 성적이 하위권이라는 특성이 있었다. 한 학생이 “6·25전쟁의 폐허에서 우리 엄마 아빠의 주린 배를 밀가루와 우유로 채워준 혈맹” “‘한민족 이민 200만명’을 받아준 유일한 나라가 미국”라고 말했을 뿐 나머지 상위권 학생들은 침묵했다. 한 중학교의 1학년생 일부는 “세계무역센터 붕괴 장면이 게임과 똑같다”며 신난다고 했다.

정치권 일부가 내심 이번 사건을 반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엉망 인사와 여권 내분, 인천공항 게이트, 국정감사, 교육정책 실패, 언론탄압 감시대상국 지정 등 악재들이 묻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 인터넷 신문에는 ‘미국에 대한 세계 반감의 절정이 테러로 표출’ ‘미제에 대한 피의 보복 시작’ ‘테러범들은 평화운동을 한 것’ 등의 글이 대거 올라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문명사회에 대한 테러다. 인류가 수천년에 걸쳐 일궈온 문명과 가치, 평화노력에 대한 총체적 도발이다. 세계인의 분노와 응징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일부 마이너리티가 테러를 정당화하고 피해자를 비웃는 가치관의 전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비뚤어진 ‘심보’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 사회 일부에는 언제부터인가 유능하고, 힘있고, 잘 사는 사람은 무조건 적대시하며 타도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이들은 자신의 무능을 환경 탓으로 돌려 정당화하면서 범 마이너리티 연대를 꿈꾸고 있다. 소외 계층 발생에 대한 책임이 일부 지배층에 있다 해도 테러를 정당화할 수 없다.

전세계의 주류와 엘리트가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은밀한, 그러나 명백한 테러 행위’가 있다. 일부가 연대해 ‘우리 다수가 옳다고 믿어온 가치에 대한 테러’에 나선 까닭이다. 대표적인 것이 메이저 신문에 대한 ‘동시다발 연대테러’다.

주류 언론에 대한 공격은 미국 테러 참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 ‘배후’가 있어 보이며 동시다발형이다. 흑막에 가려진(또는 당사자로 보이는 세력이 하나같이 부인하는)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주류 타도라는 목적도 같다.

이들 공격은 상징성과 심장부를 노린다. 미국에서는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했듯이 서울에서도 심장부인 광화문에 집중되고 있다. 8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신문의 ‘트윈타워’, 즉 비판언론이란 상징에 대한 공격이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독자들이 인질이 돼 있는 형국이다. 주류와 메이저는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는 반면 공격자들은 정체를 숨긴 채 뒤에서 움직이고 있다.

테러범과 그 배후는 실제로는 한줌이다. 테러는 우리가 피로써 지켜온 자유와 인권의 사회에만 존재할 수 있다. 용기와 단호함의 결여가 테러를 부른다. 따라서 응징은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이뤄져야 한다. 응징하는 힘의 원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신중론의 지나친 강조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즉각 행동하지 않고 상당기간 말(성명)로 대응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의아함도 있다.

뉴욕 트윈타워 자리에 200층 짜리를 새로 짓겠다는 미국인들의 결연한 다짐을 우리는 명심할 것이다.

홍호표<부국장대우 이슈부장>hp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