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여인천하' 도지원 "뭬야? 내가 욕쟁이라고?"

  • 입력 2001년 9월 9일 18시 30분


<<‘여인천하’에서 그는 한 마리 표범 같다. 교태전(중전의 거처)을 등지고 나오다 홱 돌아서면서 째려보는 눈길은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빛이다. 그러면서 중전의 눈 앞에서 자식(복성군)의 뺨을 후려칠 만큼 교활하다. SBS사극 ‘여인천하’에서 경빈 박씨 역을 맡은 탤런트 도지원(35).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경기 일산 탄현스튜디오를 찾았을 때 기자는 마치 ‘위험한 맹수’를 홀로 만나는 기분이었다.>>

캄캄한 스튜디오 안을 지나자 녹화 준비를 마친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뭬야?’하면서 돌아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돌아서 기자를 맞는 얼굴은 너무도 환했다. “죄송해요, 제가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게 해서….”

그제서야 그가 ‘서울뚝배기’(90년)에서 ‘태조 왕건’역의 최수종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요조숙녀 혜경이었고, ‘폭풍의 계절’(93년)에선 푼수기 넘치는 왈가닥 경옥이었다는 추억이 되살아났다.

어두운 스튜디오를 나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가 발레리나를 꿈꾸던 시절(그는 한양대 무용과에서 발레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후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활약했다)처럼 소녀 같은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저도 깜짝 놀라요. 이드라마에 출연해 한 욕이 이전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한 욕보다 더 많은 욕을 한 것 같아요. 감독님에게 ‘에이, 궁궐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욕을 해요’라고 살살 꼬셔봤다가 된통 혼나고 나서는 무조건 감독님 스타일대로 가기로 했어요. 이쁘게 보일 생각은 포기하고 경빈의 감정에 충실하자고 생각한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이런 연기가 되긴 되더라구요.”

도지원이 사극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92년 ‘일출봉’에 출연할 당시 한겨울 전기도 안 들어오는 민속촌에서 추위에 떨며 4, 5일간 날을 새운 기억 때문에 ‘다시는 사극을 안하겠다’고 결심했다가 이번에 김재형PD의 삼고초려에 항복하고 말았다.

“감독님이 ‘일출봉’ 때 저를 보고 찍어 두셨대요. ‘한명회’와 ‘용의 눈물’ 때도 출연 제의를 해오셨는데 제가 도망 다녔거든요. 이번에도 계속 도망다니다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는 말씀에 입을 잔뜩 내밀고 찾아뵈었어요. 눈도 안 마주치고 앉아있으니까 ‘대뜸 왜 이렇게 말랐느냐’고 야단 치셔서 ‘그러니까 전 사극이 안 된다니까요’하고 잡아뗐죠.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감독님이 주신 대본을 읽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눈이 다 환해지더라구요. 다음날 아침 당장 출연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감독님은 요즘 저만 보며 ‘내 말 듣기 잘 했지’라고 놀리세요.”

12년의 연기생활에서 두 번의 사극연기는 그에게 매우 소중하다. ‘일출봉’ 때 연기의 참 맛을 알았고 ‘여인천하’에서 비로소 발레리나에서 연기자로의 환골탈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를 하면서도 발레를 할 때 느꼈던 희열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어요. 그러다 ‘일출봉’이 끝나갈 무렵, 문득 제가 맡은 은옥이란 여자의 삶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더니 주르르 눈물이 흐르더라구요. 연기자가 자기 배역과 동화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면서 짜릿한 희열이 찾아 오더라구요.”

이전까지 자기만의 성채에 갇혀 있던 그는 그때 연기패턴을 바꿀 결심을 했다. ‘폭풍의 계절’에서 왈가닥 경옥도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에게 연기는 ‘자신을 끊임없이 변신시켜가는 작업’이 된 것이다.

이번 ‘여인천하’에 출연하면서는 육체적으로 변화가 찾아왔다. 발레라는 격렬한 신체훈련올 통해 장기간 단련된 근육이 서서히 풀리면서 얼굴 살이 눈에 띄게 빠진 것. 더욱 앙칼져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초콜렛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억지로 다시 살을 찌워보려고 했다. 체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운동을 통해 근육을 다시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운동을 하게 되면 발레에 대한 지독한 향수가되 살아날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최근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연기도중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입술을 깨물어 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려면 발레와는 또 다른 근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죠. 저에게 그 첫 번째는 발레였고 두 번째는 연기였던거 같아요. ”

세 번째는 결혼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선 그녀는 “글쎄요”하며 수줍게 웃기만 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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