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할머니의 슬픈사랑 '무던이'

입력 2001-09-07 18:31수정 2009-09-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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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이/이미륵 지음 윤문영 그림 정규화 옮김/160쪽 7000원 계수나무

초등학생 커플도 100일 반지를 나눠끼는 요즘 세상에 부모님이 짝지워준 사람과 얼굴 한 번 못보고 결혼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어느 어린이가 이 사실을 믿을까?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은 세월을 거스르면 이를 증명해줄 ‘무던이’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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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이는 가난한 소작인의 딸로 태어난 아름다운 열두 살 소녀다. 무던이는 지주의 아들인 ‘우물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10년대의 엄격한 신분질서 아래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큰 일날 소리”라며 야단치는 어머니가 무던이는 야속하지만, 어린 딸의 순수한 마음이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마음도 아프다. 결국 무던이는 열여섯 나이에 부잣집 청년 ‘일봉’과 혼인을 하지만 결혼 전에 우물이를 만나 좋아했고 혼인하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털어놓으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남편은 절로 떠나버리고 무던이는 친정으로 쫓겨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현재의 합리적 사고로는 납득할 수 없는 당시의 가치관을 조명하는 이 책을 읽고 어린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우리의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들은 인내 속에 전통과 문화를 만들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중매과정, 전통혼례식, 생활 습관 등 우리 나라의 미풍양속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그림도 아름답다.

이 책에서 우리 문화의 전통에 대한 저자의 대단한 애착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1900년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독일로 건너가 창작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압록강은 흐른다’ 등의 작품을 독일어로 발표해 독일에선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상태. 이 소설 역시 1952년 독일의 한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이다.

새로운 문명을 접해보지 못한 가난한 옛 한국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그려낸 이 작품에는 우리민족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과 문화가 담겨 있어 폭력적 오락물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줄 것이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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