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박 꿈꾸며 너도나도 투자 충무로는 '돈홍수'

  • 입력 2001년 9월 6일 18시 59분


《충무로에 돈이 넘친다. 1500억 원이 넘는 영화진흥기금, 올해까지 19개의 영상전문 펀드로 조성된 1600여억 원,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등 투자배급사의 자금 300억∼400억 원 등 4000억 원이 영화계에 투입되어 있다. 시나리오 작가 S씨는 “최근 저금리를 틈타 영화판을 기웃거리는 돈까지 합하면 모두 5000억 원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영화계의 ‘돈 풍년’은 ‘친구’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등 한국 영화의 잇따른 ‘대박’이 불러일으킨 것. 누군가는 충무로의 최근 풍경을 “‘스톱(Stop)’없이 ‘무조건 고(Go)’만 부르는 고스톱 판”으로 비유한다.

한국 영화는 올해 영화시장 점유율을 50%까지 바라보고 있다. 할리우드의 공세에 밀려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자국 영화 점유율이 10, 20%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위세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앞날에 대해서는 한국 영화의 ‘아시아 맹주론’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 몰락론’까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영화계의 몇가지 단면도를 통해 우리 영화의 명암을 살펴본다.》

▽한 은행원의 꿈〓6월 창립된 신생 영화사 ‘대니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 안민준씨(38). 그는 지난 5월말까지 신한은행의 기업금융과장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당시 가족은 물론 주변의 만류가 적지 않았다.

“일생의 모험이지만 더 나이 먹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대박이 터지면 당연히 좋지요. 하지만 돈보다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하루종일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는 게 그의 일이 됐다. 그는 현재 신인 감독을 영입하고 펀딩을 통해 모은 25억 원으로 영화 제작을 준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실토한다.

“작은 회사여서 영화 제작진을 구성하기도 힘들었는데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

▽합종연횡〓국내 영화배급사들은 외국 직배사를 빼면 2강(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2중(튜브엔터테인먼트, 코리아픽처스) 회사를 중심으로 한맥, 필름뱅크, IM픽처스, 강제규필름 등의 나머지 회사들로 짜여져 있다.

이들은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컨텐츠(영화)를 공급할 제작사들과 다양한 형태로 결합돼 있다. ‘CJ…’는 ‘명필름’과 주식을 교환했고 ‘신씨네’와는 작품 투자를 통해 전략적 파트너가 됐다.

이 판도를 위협할 가장 ‘무서운’ 존재는 오리온 그룹. 동양그룹에서 최근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중심으로 분리된 이 그룹의 ‘베팅’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복합관인 메가박스 16개관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오리온은 2002년 말까지 영화 분야에 1500∼1600억 원을 투자한다.

그룹 내 ‘메가박스 시네플렉스’의 서동욱 기획팀장은 “전체 예산 중 50%가 극장 건립에, 나머지 50%는 컨텐츠 확보에 사용될 것”이라며 “우리 꿈은 제작-투자-배급-극장으로 연결되는 할리우드의 메이저(Major)사 처럼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로, 세계로〓영화계의 관심은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지 않다. ‘태양은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전문 프로듀서로 주가를 높인 ‘싸이더스’의 부사장 차승재씨(40)는 한국 영화의 ‘아시아 맹주론’을 믿는다.

7일 개봉하는 영화 ‘무사’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 그의 야심이 들어 있다. 중국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이 작품은 여배우 장쯔이(章子怡), ‘패왕별희’의 프로듀서 장시아(張霞),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음악을 맡은 일본 사기스 시로 등 한국 중국 일본 3개국 다국적 프로젝트.

“7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무사’가 한국 시장만 바라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요즘 한국영화가 시장 규모에 비해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면서 한국 영화의 새로운 위기라고 하지만 ‘무사’의 목표는 최소한 아시아, 나아가 할리우드 시장을 개척하는 것입니다.”(차승재)

‘무사’의 배급을 맡은 ‘CJ…’는 중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CJ…’의 석동준 한국영화팀장은 “중국은 외화의 경우 한해 10편만 상영하고 수익의 85%를 가져가는 폐쇄적인 시장이지만 중국 전역에서 개봉될 경우 그 이익과 모기업의 이미지 상승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박 속의 그림자〓호황속에도 그림자는 있다. 대작들이 한꺼번에 15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장악하는 전략에 따라 대작이 아닌 영화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영화 ‘소름’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개봉 당시 9개관에서 상영되다가 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영화 ‘나티’에 투자했던 300여명의 투자자들은 영화 관계자들이 사라지는 바람에 100억 원대의 돈을 떼일 처지에 놓여 있다.

‘소름’의 제작사인 드림맥스 황필선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돈의 공급 과잉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 배우, 작가, 감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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