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대한민국은 '인터넷복권 공화국'

  • 입력 2001년 9월 5일 19시 23분


5월부터 최근까지 이모씨(34)가 모 인터넷전자사이트에 쏟아 부은 돈만 약 500만원. 편의점에서 흔히 보는 즉석식 복권을 인터넷상에서 마우스로 긁어 곧바로 당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

5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 업체의 회원은 4개월새 6만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이른바 ‘인터넷복권 중독증’으로 보일 정도로 열성적인 회원만 약 100명에 이른다는 것이 이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종이식 복권 종류만 14개인데다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복권까지 합치면 20개가 넘는다. 복권 최고 당첨액도 최근 40억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올해 5000억원 가량인 국내 복권시장 규모는 내년에는 1조원시장으로 급팽창할 전망(한국레저산업연구소 추정)이어서 ‘복권 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지경.

이는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등 기존 복권 발행기관들이 ‘마약성 복권’이라 불릴 만큼 흡인력이 강한 인터넷즉석복권 및 로토(lotto)식 온라인복권을 잇달아 내놓기 때문.

인터넷즉석복권이란 복권 발행기관들이 인터넷에서 즉석으로 당첨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 인터넷즉석복권은 제주도가 올초 처음으로 발행한 데 이어 최근 한달 사이에 한국과학문화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이 내년 인터넷복권 발행을 목표로 사업자 선정을 마쳤다. 그동안 눈치만 봐오던 중소기업진흥공단, 근로복지공단, 지방재정공제회 등 다른 기관도 연내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한국전자복권 우경제 팀장은 “기존 복권 발행기관이 모두 인터넷복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새로 창출될 시장만 2000억∼3000억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더욱 주목하는 것은 로토 사업. 로토 방식은 전용단말기에서 49개 중에 6개의 숫자를 본인이 지정하는 것으로 훨씬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일단 도입되면 기존시장을 급속히 잠식한다. 체육복표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보다 시장규모가 클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이 방식은 전 세계 복권시장의 60%를 점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행정자치부 노동부 중소기업청 산림청 제주도청 등 7개 정부기관이 주택은행을 운영사업자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체간 수주전도 치열해지고 있으며 각종 루머도 난무하고 있다.

한 인터넷복권업체 관계자는 “6월 인터넷복권업체의 한 직원이 경쟁업체 경영진의 e메일주소를 해킹해 사업제안서 내용을 빼내려다가 발각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업체들이 수주를 위해 배후에 고위 정치권이 자금을 대고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다니면서 투자를 권유하는 경우도 직접 목격했다”고 전했다.

한편 복권시장 팽창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복권의 경우 보안문제가 아직도 미비한 상태이며 미성년자들의 접속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없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지난해 레저산업에서 사행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1.4%로 높은 상태에서 인터넷복권까지 등장하면 전 국민의 도박화가 될 우려가 높다”며 “결국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앗아 가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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