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후카가와 유키코/옛 전략으로 일류 상품 만들겠나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59분


8월 8일 서울에서 ‘세계 일류상품 발굴 추진대회’가 열렸다. 산업자원부는 민간단체 중심으로 협의회를 구성해 차세대 일류상품을 연내 65개, 내년부터 매년 100개씩 발굴해 2005년까지 총 500개를 만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상품은 미국이 924개, 중국이 460개, 일본이 326개인 데 비해 한국은 76개에 불과하다.

한국의 수출 감소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악화와 아시아 시장의 침체가 큰 요인이지만 구조적 요인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환율상승이 수출산업에 순풍으로 작용했지만 2000년 총수출의 40% 이상이 반도체 컴퓨터 자동차 석유화학 선박 등 5개 품목에 집중되는 등 취약한 체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수출 위기감은 올바른 판단이다. 다만 유망산업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확대, 부품 소재산업의 수출화, 인적자원 공급 강화, 해외마케팅 강화라는 추진계획은 과거의 산업정책을 방불케 한다. 한국이 기존기술을 학습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선진국을 따라잡던 시대에는 거국적으로 육성해야 할 차세대산업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산업경쟁력은 국가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목표를 세우면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무리하게 운용하는 경향이 있다. 매년 100개라는 숫자에 매달리기보다는 기업과 함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또 국제연구 네트워크 참여, 기술표준화 전략, 경영자원 국제화 등을 추진계획에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첫째, 기초기술 개발은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간 분업과 협력이 한창이다. 국제연구 네트워크에 참여하려면 기술력과 자금력이 필요하므로 신흥국 기업에는 기회가 적지만 참여하지 않으면 기술 주도권을 얻을 수 없다.

둘째, 첨단기술일수록 제품보다 기술표준전략의 중요성이 커진다. 그러나 한국은 국내시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 자국 기준을 국제표준화하는 교섭력이 약하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에 참가해 공동시장을 갖지 않으면 일본과 중국에 비해 훨씬 불리하다.

셋째, 직접투자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일본의 경쟁력 둔화의 큰 요인이 대내 직접투자 부진이라는 교훈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직접투자 급증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최근 다국적 기업에 대한 반감이 엿보인다. 연구개발 기능을 이전해 한국에 뿌리내린 다국적 기업은 일류상품을 낳아 한국경제에 기여한다.

한국인은 외국인에게 ‘한국의 비교우위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한국의 추격시대, 일본인들은 순진할 정도로 솔직하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가 약화되고 있는 지금 일본은 조언할 만한 처지가 아니다. 엄중한 정보관리체제를 갖추고 있는 구미기업에는 조언을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국제우위는 한국기업이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일류상품은 정부-기업간, 노사간, 기업-소비자간 신뢰가 쌓이고 역할분담이 적절히 이뤄지면 시장에서 자연히 태어나는 것이다. 수출경쟁력 강화에 마법은 없다.

후카가와 유키코(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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