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 기자의 여의도 이야기]설땅 좁아지는 애널리스트

  • 입력 2001년 8월 6일 18시 24분


요즘 외국 애널리스트들의 수난 소식이 심심찮게 외신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지난주말에는 모건스탠리의 인터넷 담당 애널리스트 메리 미커가 투자자들로부터 무리한 매수추천으로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앞서 메릴린치는 비슷한 소송을 당한 뒤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키로 하고 투자자와 타협한바 있다. 일본 금융당국은 최근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의 작성경위와 정확성 등에 대한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한국은 아직 이 정도는 아니지만 애널리스트들의 입지를 좁히는 분위기가 차츰 형성되고 있다. 실적 전망의 오류, 잦은 투자의견 변경 등이 문제가 되자 금융당국에서는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분석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증권사는 아예 회사 차원에서 애널리스트들의 대외 발언을 제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론을 통해 적정주가를 밝힐 수 없게 하거나 언론과 접촉할 때는 사전에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신고서를 제출토록 한다는 것이다. 소송이나 기타 귀찮은 문제에 말려들기 전에 스스로 몸을 사리겠다는 취지다.

실제 최근 한 애널리스트는 특정기업에 불리한 분석을 제시했다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직후로 예정됐던 모 신문사의 대담에 불참했다. 그는 “회사측에서 언론과의 접촉을 일체 금지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전에도 비관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가 금융당국에 불려간 애널리스트들이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마당에 최근들어 이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자 애널리스트들은 “애널리스트들도 반성해야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자칫하면 소신있는 활동을 더욱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매도’ 의견을 내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국내 현실에서 이제는 ‘매수’ 의견조차 소신껏 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지금 미국에서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수난을 겪고 있긴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이 미국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애비 코언의 한 마디에 나스닥지수가 움직이고 조나단 조셉의 말에 따라 반도체 주가가 들먹거린다. 대다수의 투자가들이 그들의 소신있는 분석을 신뢰한다는 증거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매도’ 의견을 내면 해당 기업 투자자들의 항의가 줄을 잇고 장세를 나쁘게 전망하면 안팎에서 점검을 받는 분위기에선 절대 코언이나 조셉은 나올 수 없다. 애널리스트들에게 탁월한 분석 능력을 요구하는 것도 좋지만 소신있는 활동을 뒷받침하는 분위기가 함께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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