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하리수 이젠 여자의라이벌

  • 입력 2001년 7월 27일 17시 27분


'빨간통 패니아' 광고는 하리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극명하게 드러낸다. 여자는 하리수의 미모를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거리 벽에는 하리수가 등장한 빨간통 패니아 광고간판이 걸려있고 양쪽에서 두 여자가 마주 걸어온다. 멀찍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늘씬한 몸매에 미모의 소유자들. 한쪽은 붉은색 옷을 입은 하리수, 상대편은 흑백색의 옷을 입은 모델.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왕가위 감독의 전매특허였던 흘려 찍는 방법으로 연출돼 그림자처럼 스쳐지나간다. 오로지 특출난 미녀 두명만이 또렷하게 실물을 드러낼 뿐. 예쁜 여자만 초점을 맞춘다. 두 여자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서로 엇갈리며 부딪히려는 찰나 하리수가 들고 있던 빨간통 화장품이 허공으로 떨어진다. 박자를 맞춰 흘러나오는 음악은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 이때 하리수의 아름다운 얼굴이 정면으로 클로즈업 된다. 시청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도발적인 시선.

상대편 여자 역시 하리수를 바라보더니 깜짝 놀란다. 너무 아름다워서 놀랬을까. 벽에 걸린 광고 모델과 동일인물을 봐서일까. 두명이 은밀하게 교환하는 시선은 짧지만 지독하게 강렬하다. 화장품을 집으려다 손이 포개진 두 사람은 서로의 손끝을 터치한다. 그러더니 휙휙 돌아서 자기 길을 걸어간다.

빨간통 패니아의 이번 두번째 광고의 첫 느낌은 이런 것이다. 여자끼리도 이렇게나 짜릿하고 기묘한 찰나가 연출되는구나. 서로의 미모를 뽐내듯 걸어오던 두 여자가 마치 첫눈에 반하기라도 한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니. 게다가 첫번째 광고에서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로고로 사람들을 놀리 듯이 깔깔거리던 무명의 하리수가 이제 거물급 스타가 된 느낌이다. 그것도 정상적인 여자로서.

하리수를 향한 이 과도한 열기는 무엇 때문일까. 초반의 스포트라이트는 전례없는 트랜스젠더 연예인이라는 희귀성과 성이 바뀐 특별한 사연이 주는 신기함 때문이었다. 그로 인한 잦은 방송출연으로 이제 그녀에 대한 성적호기심은 원없이 풀렸다. 그리고 결론은 내려졌다. 하리수는 몸도 마음도 여자라는 것.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점들을 속속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유난히 아름답다는 점, 여자보다 더 여성스럽다는 점. 그 길다란 눈매와 짙은 눈썹 오똑한 코. 이 아름다움에는 한때 남자였던 모습과 현재 여자의 모습이 묘하게 공존한다.

게다가 웃을 때조차 손으로 입을 가리고 십자수가 취미라는 그녀는 여성성의 원형을 그대로 구현해낸다. 그래서 여자보다 더욱 아름답고 신비로운게 아닐까. 그 오묘한 조화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독보적이다.

여자들은 처음 등장한 하리수를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보다가 태도를 바꾸며 긴장한다. 즉, 하리수는 이제 여자의 라이벌인 것이다. 그래서 빨간통 광고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양파처럼 겹겹이 신비하던 그녀는 여자끼리 미모 대결을 펼치다가 동경과 감탄의 시선을 받는 존재로 재탄생한다.

하리수에게 열광하는 우리들.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새 너그러워진 것일까? 이해와 인식의 변화를 겪어낸 것 같지는 않다. 혹여 인간 하리수는 배제하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과 섹시한 몸에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아닐런지.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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