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을 말한다]작가 박수진의 연극 '한 여름 밤의 꿈'

  • 입력 2001년 7월 26일 18시 27분


첫사랑이나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사람이 어디까지 유치해질 수 있는지.

나는 사랑을 테마로 한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 여름 밤의 꿈’을 번안해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마당놀이로 만들어 현재 공연중이다.

올해 나이 서른인 내가 굳이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끼던 때, 쉼 없이 사랑의 말들을 뽑아내면서도 흥분한 나머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연인들의 철없는 가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극중에서는 두 쌍의 남녀가 서로 엇갈린 사랑 때문에 갈등한다. 거기에 장난끼 가득한 신(神)의 딴지걸기가 가세한다.

그 두 쌍의 연인이 도망치고 쫓으며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자, 어떻게 될까.

나는 이 연극에서 셰익스피어의 사랑 표현법을 포기했다. 그 대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저 헝클어진 머리 좀 봐’ 하고 걱정해주는 촌스런 우리 식 표현법을 택했다. 우리 관객들에게 잊혀져가는 우리 식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내 관심사는 잘 알려진 외국의 명작을 우리 마당놀이로 바꿨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 가에 있다.

우리 춤을 추고 우리 노래를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극단 ‘미추’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만큼 신명나는 한국식 마당놀이를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땅에서 난 사람들, 음주가무로서는 그 누구도 대적할 민족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 밤이고 게다가 야외인데, 배우들을 따라 노래하고 춤 좀 춘다고 누가 말리겠는가.

박수진(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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