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정보화시대와 '책맹'

  • 입력 2001년 7월 20일 18시 36분


책을 읽자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6월 초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이 발족되고, 대학교수들이 읽는 전문지 ‘교수신문’의 웹진(www.kyosu.net) 토론마당에서는 ‘책 읽는 대학 만들기’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점점 책 안 읽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국대학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24개 국립 대학 도서관의 재학생 1인당 장서는 평균 40권 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 4년제 대학 가운데 장서 수 100만권 이상인 대학은 8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양 인문학의 대가들 전기를 읽을 때 부러운 것은 그네들이 책으로 지식을 얻고 책을 통해 서로 담론을 나누는 전통이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그 부러움은 러시아의 문예학자 미하일 바흐친의 전기 ‘바흐친’(문학세계사·1993) 같은 책을 읽으면 정점에 달한다.

바흐친은 어렸을 때부터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같은 책들을 읽었고, 그의 형제 니콜라이는 10대 때 이미 “끊임없는 지적인 긴장상태에 있었고 그들 자신이 수천 권의 책을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도 무한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작은 서클의 지도자가 된다. 전기가 위인을 미화하는 측면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경탄할 일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도 분명히 그런 전통은 있었지만, 20세기 초 제국주의가 아시아에 약진하면서 그 전통은 산산이 파괴되었다. ‘근대화’를 위하여 옛 학문을 버리는 일, 실용적인 학문에 매진하는 일이 애국이고 의무인 것처럼 여겨졌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런 전통이 한 권의 책과 인간의 철학 때문에 살인이 벌어지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열린책들·2000년) 같은 추리소설을 낳는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대가인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보르헤스 전집’·민음사·1997년)과 같은 세계적인 작품을 낳는다. ‘바벨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끝없이 책으로 둘러싸인 우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 책이 그네들의 문화적 전통에서 차지하는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책은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경희대 영어학부 도정일 교수는 ‘책맹시대’가 다가온다고 경고한다. ‘문자도 알고, 높은 교육도 받았고, 그래서 책을 읽자면 읽을 수도 있지만 죽지 못해 읽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읽기 싫고 읽혀지지 않는 것이 책맹(aliteracy)’이다. ‘정보화 시대’라고들 하지만, 과연 책맹들이 가득해진, 책이 빠진 정보화 시대가 주는 정보란 어떤 정보일까.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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