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로빈 쿡 의학소설 '벡터'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41분


◇벡터 (전2권)/로빈 쿡 의학소설 각권 340쪽 내외 8500원 열림원

‘벡터’(치명적인 병독을 나르는 동물을 뜻한다)라는 제목이 적절하게 암시하는 것처럼, 의학 스릴러의 대가 로빈 쿡의 신작은 공기 속을 떠도는 미세 물질에 의한 인위적인 감염(생물학 무기)과 그에 따른 대량 살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코마’ ‘바이러스’ 등 이전의 작품이 그러했듯이, 작가는 자신의 의학적 전문 지식과 선량한 시민들의 근원적 불안을 혼합해 훌륭한 스토리를 짜내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 잭은 전작 ‘6번 염색체’에서도 활약했던 뉴욕 맨해튼 검시의 사무국 소속의 의사이다. 관료주의를 혐오하고 정의감에 넘치는 이 인물은 백인 중산층의 도덕을 대변하며, 그의 상대역인 러시아 출신의 택시 기사 유리 디바노프 역시 좌절한 이민자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탄저균을 이용해서 연방 정부를 공격하는 커트는 백인 우월주의 민병대의 잔혹함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 인물 배치는 현대 미국의 중산층 백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테러’로 요약할 수 있다. 로빈 쿡은 이 작품을 통해 테러의 요소들, 그러니까 이민자, 총기, 인종 차별, 반유대주의, 첨단 과학에 의한 대량 살상 등을 훌륭하게 재현해 내고 있는 셈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구소련의 생물학 무기 공장에서 일했던 이민자 유리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미국에 불만을 품는다. 그리하여 그는 조국을 망쳐버린 미국에 대해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생물학 무기를 대량으로 제조해서 뉴욕 시에 살포하려는 가공할 음모를 꾸민다.

그 첫번째 희생자는 양탄자 상인인 제이슨 패러리스이다. 그는 우편물에 함께 실려온 미량의 탄저균을 들이마시고 다음날 죽어버린다.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미세 먼지로 사람을 죽이다니, 오싹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죽음에 의심을 품은 잭이 필사적으로 뒤를 쫓기 시작하고, 때마침 유리의 부인 코니가 급성 호흡 부전으로 사망하고, 하수도의 쥐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들은 유리가 제조한 보툴리누스균의 희생자가 된 것이었다.

별개로 일어난 사건이 모두 유리와 관련이 있음을 안 잭은 수 십만 명을 일시에 죽음에 빠뜨릴 가공할 음모를 알게 된다. 유리는 커트의 손에 죽게 되지만, 유리가 제조한 탄저균은 연방 건물의 송풍기를 통해 뉴욕 남서부를 쓸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생물학 테러’라는 충격적인 테마는 상투적인 인물 구도와 긴장감이 떨어지는 구성 때문에 그 흥미를 잃어버리고 있다. ‘바이러스’가 보여주었던 그 흡인력은 사라진 것이 스릴러 대가의 쇠락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사족. 표지에 나온 원제 ‘Vecter’는 ‘Vector’의 오기(誤記)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장은수(문학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