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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30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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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명사를 보여주고 관련되는 동사어를 떠오르게 했을때 뇌의 활성화 부위를 붉은 색으로 표시했다. 공간지각을 관장하는 왼쪽 뇌의 정수리 부근 두정엽(화살표)이 활성화돼있다.
전북의대 재활의학과 김연희 교수팀은 14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이들이 한글로 생각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연구해 최근 ’국제인간뇌지도학회’에 발표했다.
보통 MRI는 뇌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쓰인다. 반면 fMRI는 뇌에서 국소적으로 일어나는 뇌혈류량과 혈액 내 산소 농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미세한 자기 신호의 변화를 동영상처럼 찍어 뇌의 활동상태를 색채지도로 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92년 처음 등장해 뇌의 각 부위별 기능을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도구가 되고 있다.
김 교수팀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먼저 한국어 명사를 소리로 들려주고 관련된 동사를 생성하게 했다. 이어 글자로 명사를 보여준 다음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도록 했다. 즉 ‘연필’이란 명사를 제시하면 이들은 ‘연필로 쓰다’같은 동사어를 마음 속에 떠올린 것이다.
이 실험에서 명사를 소리로 들려준 경우는 한글 사용자나 영어 사용자나 뇌의 활성부위가 비슷했다. 반면 한글 명사를 보여주고 관련된 동사어를 떠오르게 한 경우에는 뇌의 시각 영역, 언어 생성 영역과 더불어 왼쪽 두정엽이 활성화됐다. 머리의 정수리부분 바로 밑에 있는 두정엽은 공간지각에 주로 관여하는 영역이다. 김 교수는 “두정엽이 활성화된 것은 가로로 글자를 나열하는 영어와 달리 우리글은 자모를 공간적으로 배치해 뇌에서도 공간지각영역의 기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며 “이 부위가 손상된 실독증 환자는 영어는 읽지만, 한글은 읽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fMRI를 통해 뇌 연구가 급진전하면서 나라마다 그 언어의 특성에 따라 뇌의 언어처리영역도 조금씩 다르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불규칙 변화가 많은 영어와 규칙적인 이탈리아어 사용자는 말할 때 뇌의 언어 처리 영역이 다르다. 또 일본사람들은 상형어인 간지와 음성어인 가나를 처리할 때 뇌의 활성화 부위가 달라진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문자’는 뇌의 진화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신동호동아사이언스기자>do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