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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27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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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타계한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작품과 인생, 철학을 정면으로 비판해 파문을 일으킨 시인 고은씨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의 미당 평가에 대한 반론이 쏟아졌지만 본인은 정작 재반론을 펴지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어 궁금증을 더한다.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미당을 비판한 ‘미당 담론’을 기고하고 곧장 세계시인대회 참석차 17일 독일로 떠났던 고씨는 당초 26일 귀국하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으나 일정을 앞당겨 23일 입국해 조용히 칩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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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은의 미당비판' 비판 - 고은씨 미당비판론 뜨거운 논란 - 고은씨 스승 미당에 직격탄 |
고씨를 만나기 위해 기자는 24일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자택에 찾아가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친척이라는 사람이 고씨 집을 지키고 있었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고씨는 창작과비평사 관계자를 통해 “집 앞에서 기다리지 말고 그냥 돌아가 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 후 고씨와 몇 차례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의 속내를 듣는데는 실패했다. 25일 잠깐 통화가 됐지만 그는 “저는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이해해 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침묵의 이유를 묻자 “여러 사람이 제 글에 대해 반론을 폈지만 저는 아무 말도 안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고씨와 연락을 취하고 있는 ‘창작과 비평’ 측은 고씨의 ‘묵비권’을 적극 옹호하는 분위기다. 김성은 ‘창작과 비평사’ 문학팀장은 “고 선생은 당초 스승을 비판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는데 다시 이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고 선생은 자신이 나서기보다는 다른 문인들이 재반론을 펴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문단에서는 고씨의 침묵이 ‘미당 논쟁’이 불리하게 전개되는 듯한 분위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씨의 ‘용기’를 지지하는 얘기들이 간혹 나오고 있긴 하지만 비판론이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이 이런 추측에 무게를 더한다.
고씨는 이번주 중 미국에서 열리는 문학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씨의 미당 비판은 ‘일회성’ 문제 제기로 그쳐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창작과 비평’은 사태의 추이를 보면서 8월 발간될 가을호에 ‘미당 논쟁’을 심화시킬 계획이다. ‘창작과 비평’은 이번 논란을 사회 전반의 ‘문화개혁 운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창작과 비평’ 관계자들은 “고씨의 ‘미당 재비판’을 싣는 것은 고려하고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