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첫 '부부평등'

  • 입력 2001년 5월 22일 18시 33분


“직장 사람들 모두 ‘부인이 극성스러운 여자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 부인이 저인 줄은 모르고 하는 말이겠지만 전 정말 억울해요.”

첫 부부재산계약 등기신청의 주인공인 부인 장모씨(29)는 22일 자신과 남편 김모씨의 계약내용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보수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 서글프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주변인들이 자신들을 ‘못난 남편’과 ‘극성스러운 아내’로 오해할 것을 무척이나 걱정했었다. 그래서 장씨는 계약 사실을 시댁에 알리지 못했고 보도과정에서도 철저히 익명성을 보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기자는 두 사람이 ‘훌륭한 남편’이고 ‘슬기로운 아내’라고 생각한다. 또 둘 사이의 계약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의 징표’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95년. 제대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한 김씨는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동갑인 장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장씨는 그 후 7년 동안 김씨를 뒷바라지해 끝내 공무원 시험 합격을 돕고 가정도 주도적으로 꾸리는 ‘순애보’의 주인공이 됐다.

계약내용은 이런 김씨가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영원한 사랑의 다짐이었다. 장씨에게 이 선물은 너무나 큰 심리적 보상이 됐다.

많은 법조인들은 이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재천(崔載千) 변호사는 “부부재산계약 제도는 결혼이라는 남녀간의 계약을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라고 평가했다. 또 ‘국제투명성기구’는 몇 해 전 ‘사회의 투명성은 가정의 투명성에서 나온다’며 가정의 재산관계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사회의 부조리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혼과 남녀평등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해볼 기회를 우리 사회에 제공해준 김씨와 장씨 부부를 오히려 ‘선구자’라고 부르고 싶다.

신석호<사회부>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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