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버려야 사는데…"

  • 입력 2001년 5월 21일 18시 23분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최근 눈물을 두번 흘렸다.

한번은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영결식 때.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건설에 출자전환 결정을 내렸을 때도 그랬다. 두번 모두 ‘통한(痛恨)의 눈물’인 셈이다.

하지만 정 회장의 눈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성싶다.

현대투신 매각문제로 미국 AIG그룹과 한국정부가 벌이는 협상이 한때 잘 나가는 듯하다가 정 회장측이 “현대증권 지분을 매각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채권단측에서 “현대그룹에 또 한번 유동성 위기가 몰아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새나온 것도 바로 이 시점과 일치한다.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인사는 “정 회장측은 완전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현대투신에 대한 부실경영 책임을 지고 금융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답답해했다.

이 같은 변화가 정 회장의 자신감 회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 현대그룹의 어디를 둘러봐도 그럴 상황은 아니라고 보인다. ‘버티기’를 통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행위로 비쳐질 뿐이다.

현재 현대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은 현대상선. 이 회사의 대주주는 현대엘리베이터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는 정 회장의 장모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을 지배하고 다시 현대상선은 ‘몇 개 남지 않은’ 현대그룹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이 같은 ‘모양새’도 한때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했던 현대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이틀 전 정부와 여당, 야당이 함께 머리를 맞댄 토론회에서도 현대문제는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혔다. 여기서도 정 회장측이 기득권을 지키는 데 너무 집착하는 것이 현대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고 지적됐다.

문제의 해결책은 ‘버려야 산다는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에 성공한 다른 기업들의 전례(前例)가 잘 말해준다.

김동원<경제부>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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