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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9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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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 분)은 부인과 그의 정부를 살해한 죄목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어느 날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간수장의 소득세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어 다른 간수들의 절세를 도우고 재테크 상담을 한다. 나중에는 간수장을 위해 돈세탁과 불법계좌 관리까지 해주면서 신임을 얻은 후 탈옥에 성공한다는 얘기다.
| ▼글 싣는 순서▼ |
| 1. 고객이 원하는 대로 2. 텔러(teller)에서 어드바이저(adviser)로 3. '무소불위의 화폐' 신용 카드 4. 종신보험 "인생을 설계해드립니다" 5. '클릭클릭'…왜 은행까지 가나요? 6. 재 테크의 만병통치약, 랩어카운트 7. 간접투자의 해결사, 뮤추얼 펀드 8. '큰손만 오세요, 부티크펀드 9. 세계증시의 통합바람 10. 우리에게도 경쟁력은 있다 |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이 무엇일까? 세무사일까? 회계사일까?
아니다. 뱅커(Banker)다.
미국의 은행에는 뱅커와 클럭(Clerk)이 있다.
뱅커란 고객의 돈문제와 관련된 모든 고민을 상담하고 해결해줄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반면 클럭은 수납을 하고 대차를 맞추는 단순 사무직이다.
미국 뉴욕 파크애버뉴 53번가에 위치한 씨티은행 영업점. 우리 은행과는 점포구조가 다르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씨티카드 뱅킹센터’라는 자동화코너가 있다. 자동화기기 뒤로는 입출금만 담당하는 창구직원이 10명 가량 앉아 있다. ‘클럭’이다. 여기까지는 국내 지점과 비슷하다.
하지만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다소 복잡할 뿐만 아니라 출입구 앞에 낯선 직책의 사람이 앉아 있다. 서비스 오피서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얼핏 ‘단순 안내원이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곧바로 판단착오임을 깨달았다. 은행 전선에 최고의 베테랑을 배치해놓은 것. 고객이 들어서면 이 서비스 오피서는 간단한 상담을 통해 누구를 찾아야 할지를 조언해준다. 은행 상품뿐만 아니라 증권 보험 등에 대해서도 박식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이 이 곳의 설명이다.
서비스 오피서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면 13명의 상담원(CFA)이 개별 테이블에 앉아있고 3명의 투자상담사(파이낸셜 플래너·FP)도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방안에 따로 자리잡고 있다. 모두 ‘뱅커’들이며 주로 상담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반면 입출금창구에 앉아 있는 텔러들은 모두 파트 타이머로 80% 이상이 계약직이다.
“상담하러 온 손님에게 다른 것은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물어 필요할 경우 FP에게 연결하도록 하고 있다. 은행에 찾아올 때는 자동차대출을 받는다거나 주택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등의 잠재적인 요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FP와 연결시켜주는 횟수가 CFA의 실적으로 평가된다.”(씨티은행 바이스프레지던트 데니스씨)
FP인 리안 리는 월가에서 일하던 전문투자가 출신. 그는 씨티은행의 상품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의 보험 연금 뮤추얼펀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분야별로 다양한 포트폴리오, 즉 개인의 금융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은행처럼 자기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다.
씨티은행뿐만 아니라 BOA 웰스파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은행 등 대부분 미국 은행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곳 은행에서 상담원이나 투자상담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객의 자산 부채현황과 가족사항 및 향후 수입전망 등을 파악하는 일이다. 고객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거기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고 고객의 장기 재테크 계획까지 세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담원과의 만남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최소한 2, 3번은 만나게 되고 더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웰스파고 PR담당자인 마이클 스콧은 “미국 은행들은 고객에게 상품 하나를 파는 것보다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해 고객이‘계속적인 거래’를 하고 싶도록 만드는 데 치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은 더 이상 자기가 생산한 상품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이 생산한 상품까지 파는 ‘금융 슈퍼마켓’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슈퍼마켓 점원 노릇을 하려면 점포에 전시된상품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같은 상담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꽤나 엄격하다. 씨티은행 상담원의 경우 입행 6개월 이내에 보험과 증권을 팔 수 있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 만약에 이를 따지 못할 경우 사표를 써야 한다.
씨티은행 데니스씨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발굴해 보험 은행 증권과의 교차판매를 늘리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며 고객도 기쁘게 하는 윈윈 전략”이라며 “특히 은행은 신뢰성이 높아 이 일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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