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정치 가업 잇기

  • 입력 2001년 5월 1일 18시 35분


아일랜드계 술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조지프 케네디는 맨손으로 미국의 로열 패밀리를 창건한 인물이다. 둘째아들이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이고 직계에서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3명, 법무부장관 등이 배출됐다. 그는 금주법 시기에 위스키를 밀수입해 범죄조직을 통해 유통시켜 거부를 쌓았다. 이렇게 썩은 돈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거자금을 대주고 영국대사로 부임해 음침한 경력을 세탁했다. 존 F 케네디가 아버지의 막강한 재력과 인맥의 후견이 없었더라면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에서 첫 여성 외상으로 발탁된 다나카 마키코 의원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총리의 딸이다. 다나카 전총리는 부정축재 물의로 총리직을 물러났고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돼 정치생명이 끝난 풍운의 정치인이다. 그는 자민당(自民黨) 최대 파벌의 유지 비용을 변통하느라 돈의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은 자녀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관행이 보편화한 나라이다. 작년 총선에서는 총의석 480석 가운데 세습의원이 110명이나 당선됐다.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41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장남이다. 동생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공교롭게 대통령 당선을 결정지은 주의 선거관리를 맡아 편파성 시비에 휘말렸다. 필리핀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딸로 정계에 입문한 지 10년 만에 최고 권좌에 올랐다.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전총리도 전대통령의 딸이다.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의 딸 박근혜(朴槿惠) 의원은 최근 전직 대통령들을 순방하며 부토와 아로요의 꿈을 키우는 모양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명문가 출신 정치인은 재력 조직 유명도에서 남보다 앞선 출발선에 서게 된다. 유권자의 심판을 거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세습보다 여론의 시선이 덜 따갑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속담도 있다. 그렇다고 빈한한 집안 출신이라고 해서 낙담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한국은 계층 상승이 무척 활발한 나라이다. 세탁소집 딸이 국회의원 되고 자장면집 아들이 장관 되는 나라가 아닌가.

<황호택 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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