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빛의 작가' 김요섭 애잔한 환상동화

  • 입력 2001년 4월 27일 19시 16분


꽃주막, 달 돋는 나라, 푸른 연

김요섭 지음 이춘길 외 3명 그림, 각권 120쪽 7000원 대교출판

찻집에서 들은 클라리넷의 소리가 유난히 구슬프던 어느 날 밤, 시인은 헌 군복 차림으로 악기를 불던 청년에게서 연필을 샀다. 잠을 청하려는데 연필이 시인을 부른다.

“요섭 씨! 빨리 나를 깎아 동화를 써 보세요!”

클라리넷 청년은 중부전선에서 부상당한 뒤 갓 돌아온 용사. 연필을 팔며 끼니를 잇는다. ‘자기 아들도 중부전선에 있다’는 할머니의 집에 들렀다가, 앗! 말을 잇지 못하고 만다. 자기의 글씨로 쓰여진 편지를 할머니가 또 읽고, 또 읽고 하고 있었던 것. 그것은 그가 글을 쓰지 못하는 병사를 위해 대신 써준 편지였다.

아들이 치열한 전투 속에서 죽어간 줄 모르고, 할머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떠진 한 쪽 눈으로 은하수를 쳐다보고, 은하수만 따라서 어둠 속을 걷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병정은 내 등에서 어머니를 가늘게 부르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요즘 아이들, 컴퓨터로 매일 외계인과 전쟁을 치른다. 실체가 없는 아이콘일지언정 생명의 기호를 죽이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서 병사를 죽이는 일은 한 인간의 꿈, 소망, 사랑을 사라지게 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한없는 슬픔 속에 몰아넣는 일이다. 요즘 아이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김요섭(1927∼1997)의 동화작품 속에는 지나간 시대, 세계사의 질곡 속에서 꺾여간 젊은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그들을 보낸 가족들의 슬픔도 처연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그런 어두움 속을 수놓는 것은 ‘빛’에 대한 유난한 애착이다.

산천을 고요히 비치는 달빛, 안개 속을 비추는 가로등의 희미한 빛, 숨져 가는 병사를 등에 업은 채 쳐다본 하늘의 반짝이는 은하수…. 그래서 그는 ‘빛의 동화작가’로 불린다.

사실주의적 ‘생활동화’가 차츰 주류를 이뤄가는 속에서도 그는 한사코 환상과 우연을 오가는 환상적 동화 쓰기를 고집해 ‘한국의 안데르센’으로 불리기도 했다.

세 권의 책에는 ‘안개와 가스등’ ‘샛별과 어머니’ 등 그의 대표 동화 20편이 실렸다. 초등학교 고학년용.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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