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27년만에 꽃 핀 '한-일 우정'

  • 입력 2001년 4월 27일 18시 59분


19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한 재일동포 2세 대학생과의 우정을 27년 간이나 간직해온 일본인들이 있다.

1974년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1학년에 재학 중 암으로 숨진 박훈(朴勳)군의 일본인 친구 17명이 그들. 박군과 기숙사 생활을 함께 했던 이들은 21일 박군의 부모가 살고 있는 홋카이도(北海道) 도베쓰(當別)정으로 찾아가 8그루의 벚나무를 심고 그와의 우정을 회고했다. 나무 옆에는 ‘박훈군과의 추억은 영원히’라고 쓴 팻말도 세웠다.

일본인 친구들은 박군이 숨졌을 때 “나무라도 심어 그가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쫓기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가 훌쩍 40대 후반이 돼버렸다. 지난해 봄 기숙사 사감이었던 교수의 정년퇴직을 계기로 다시 만난 이들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했고 결국 올 봄 실행에 옮기게 됐다.

일본인 친구들이 박군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조국인 한국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 박군은 73년 김대중(金大中)씨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박군과 같은 방을 썼던 스가노 리키오(菅野理樹夫·48) 다카치호(高千穗)대 교수는 “박군의 조국에 대한 생각은 굉장히 강했다”며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고 한일공동으로 월드컵축구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알면 그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박군의 아버지 박두영(朴斗永·76)씨는 “27년간이나 훈이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짧게 살다 갔지만 훈이는 좋은 친구와 선배들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심은 벚나무는 3년 뒤쯤 꽃을 피운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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