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철학 전문저널 창간한 '사회와 철학 연구회'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47분


'사회와 철학 연구회' 회원들
'사회와 철학 연구회' 회원들
한 명의 발표자를 놓고 최소한 4∼5시간, ‘배고플 때까지’ 계속되는 잔인한 토론으로 ‘악명’이 높은 ‘사회와 철학 연구회’(회장 박종대 서강대 교수)가 철학 전문 반년간지 ‘사회와 철학’(이학사)을 창간했다.

이 학술지는 하나의 주제에 놓고 여러 필자들의 다양한 주장을 담은 단행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창간호의 주제는 ‘세계화와 자아정체성’.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각되는 문제에 대해 철학 연구자들이 발언하고 나선 것이다.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 아래서 사회 현안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회피해온 우리 ‘사회철학’의 오랜 풍토를 반성하며 1993년 결성된 이 학회는 운영방식부터 기존 학회와 다르다. 학회 운영의 중심은 회장과 총무가 아니라, 개개인의 연구 역량에 따라 선정되는 7명의 ‘연구기획위원회’.

이 연구회 멤버인 통일정책연구소 선우현 연구원은 “교수냐 아니냐는 회원의 자격 조건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일한 자격 조건은 연구 역량이라는 것. 이같은 원칙에 따라 학회는 연구와 토론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운영돼 왔다.

이들의 목표는 ‘자생철학’을 적극 모색하는 것. 동국대 홍윤기 교수는 이에 대해 “적어도 지금까지 학계가 해 왔던 학문 수입상의 역할에 그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것은 우리가 외국 철학의 논의수준을 이미 따라잡았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이 연구회는 ‘자생철학’을 위해 각 분야의 연구자들을 초청해 토론을 벌여 왔다.

회원인 울산대 철학과 권용혁 교수는 “고려대 이승환 교수(중국 철학)의 ‘아시아적 가치의 담론 이론적 고찰’, 한신대 김성구 교수(경제학)의 ‘IMF 위기의 정치경제학적 고찰’ 등 사회철학 외의 타 분야 전공자가 발표자로 나설 때 논의가 더욱 치열해지곤 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이번 창간호에 그대로 반영됐다. 외국의 학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소개를 주요 목적으로 하던 기존의 철학 학술지와 달리, 모든 학설은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이유선 교수는 수록 논문 ‘자문화 중심주의와 문화적 정체성’에서 다문화주의 시대 한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의 대표적 철학자인 리처드 로티의 ‘자문화 중심주의’를 방법론으로 활용했다.

경북대 김석수 교수는 수록 논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새로운 시민 주체’에서 한국사회 내부에 있는 ‘민중의 길’과 ‘시민의 길’의 갈등을 지적하며, 독일의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행위의 정치학’을 하나의 방법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권력을 감시하고 관찰하는 새로운 주체를 확립해 보자는 것이다.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철학의 눈’으로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며 ‘자생철학’을 모색하는 이들의 시도에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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