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차병직/막가는 공권력 법위에 있나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45분


우리는 슬프다. 공권력은 권력을 휘두를 줄만 알지 그 권력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도대체 모른다. 대우자동차 노조원들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은 새삼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노동자의 노동권과 집회의 자유라는 인권이 사정없이 짓밟힌 데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어쩌면 우리의 공권력은 저렇게도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오직 조종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 2월 임시국회에서 노동부장관은 공권력 행사를 자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초강경 시위진압 방침이 결정되고, 대검 공안부는 화염병 사범 특별수사단을 설치하겠다며 시위와의 전쟁을 선포하더니, 과격시위 엄단이란 대통령의 한마디가 있은 지 1주일 뒤에 경찰 지휘관은 현장에서 "걷어라"고 명령했다. 우리 공권력의 뇌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경찰병력의 몽둥이와 방패에 흘러 넘쳐 있다. 법보다 정권이 우선이란 그들에게 공권력은 법으로부터, 더 근원적으로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상황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정권 우선"에 충실한 로봇불과▼

우리는 슬프다. 공권력은 필요한 경우 언제든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힘이라는 인식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필요성에 대한 판단도 권력의 주체가 편할 대로 한다. 힘을 행사할 때는 그 물리적 작용의 결과로 펼쳐질 강제된 질서만 떠올릴 뿐이다. 그 과정에서 유린되는 그보다 높은 가치를 향해서는 질끈 눈을 감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조 사무실 출입을 해도 좋다는 법원의 결정을, 그것도 변호사가 설명까지 해가며 실현하려는 정당한 권리를 그리도 가볍게 묵살하겠는가. 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어기는 자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국가란 사실을 분명히 확인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우리는 슬프다. 인간다운 행복을 성취할 금과옥조는 헌법과 법률에 모조리 담겨 있는 줄 알았다. 우리에게 자유는 주어져 있고, 그것을 제한하려는 공권력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엄격히 행사돼야 한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실제로는 정반대다. 법 위에 있는 공권력이 은혜롭게 허락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권리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사무실로 향하는 노동자들은 머리에 띠를 두를 수도 있고 모자를 쓸 수도 있다. 행여 그 대열에 해고근로자가 끼여 있어도 경찰은 미리 제지하거나 신분 확인을 할 수 없다. 정 불안하면 회사가 노조사무실에 있는 해고근로자들을 상대로 퇴거청구 소송을 해야 옳다. 그들이 폭력이라도 행사하면 경찰이 달려들어 체포하면 된다. 무력이 말을 하면 법률은 침묵한다 는 격언이 고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우리는 슬프다. 인간은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개성을 발휘하고 의사를 형성하며, 집단적 형태로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민주정치를 실현한다.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는 헌법이 아니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아주 조심스레 부여하고 있다. 모든 집회나 시위는 사전에 신고만 하면 된다고 달랜다. 그러면서 다양한 이유로 금지하고 제한할 수 있게 한다.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되는 위장된 신고제다. 아무리 위헌을 외쳐봐도 법 개정은 난망이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1인 시위다. 그랬더니 며칠 전 경찰은 광화문에서 1인시위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림새가 혐오스럽다며 경범죄로 즉심에 넘겼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기발한 법 해석과 집행이다. 참여연대의 국세청앞 1인시위가 진행중인 가운데 삼성 이재용씨에게 증여세가 부과된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시위 손실액은 민주주의 비용▼

우리는 슬프다. 서울시 교통관리실과 종로구는 함께 어려운 계산을 해냈다. 지난 달 말일 종묘공원에서 3시간에 걸쳐 개최된 민중대회의 사회적 비용 손실액이 17억4316만원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자세히 보니 당시 주변을 지나던 운전자와 승객의 시간가치가 16억5930만원, 지체하면서 소모한 연료값이 5850만원이다. 정부가 허공에 날려버린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에 비하면 티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기본권 향유를 위한 민주주의의 비용이 그 정도 된다는 청구서를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최근의 이 모든 일들이 인권을 부르짖는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 슬프다. 우리의 마지막 위안 거리는 이것이다. 헌법의 자유는 없고 단지 그 자유가 제한되는 데 분노할 자유는 보장돼 있다.

차병직(이화여대 대우교수·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bjcha@hk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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