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김하늘, 늑대 같은 여자

  • 입력 2001년 4월 13일 14시 54분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 둘 사이엔 싸움도, 질투도 없다. <레쓰비>의 극단적인 사랑법은 공유하는 것이다.

맑게 웃고 있는 김하늘. 고개를 돌리며 활짝 웃는다. 그녀의 눈길이 닿는 곳에 두 남자가 클로즈업 된다. 초록색 니트를 입은 캐주얼한 차림의 자유로워 보이는 남자.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댄디한 느낌의 남자. 둘 다 미소를 띄며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시선을 따라가면? 역시나 머리카락이 날리는 김하늘이 보인다. 김하늘이 웃는 장면과 남자들이 서 있는 장면을 따로따로 커트해서 보여주지만 그들은 늘 그렇게 마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허어, 난감한 장면 연출. 다름 아니라 김하늘이 양쪽에 하나씩 남자를 팔로 두르고 있다. 꽉 팔에 안고선 어느 쪽도 놔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코에 앙증맞은 주름까지 잡으며 너무너무 유쾌하고 즐겁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양쪽에 남자라. 마음이 불편할 법도 한데 어디 하나 마음 걸리는 것 없다는 듯 티 없이 웃는 그녀. 그 풍만한 웃음이 잦아들고 약간의 소강상태. 딱히 누구랄 것도 없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널 보낼 바에는 너의 반이라도 갖고 싶어' 그리고선 커피캔을 꾸깃, 뭉개뜨린다. 커피스캔들 레쓰비.

히야. 깨끗한 화면과 미니멀한 연출과는 달리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은 독하디 독하다. 설정은 간단하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자신도 여전히 사랑한다. 이럴 때 어쩔 것이냐.

everything or nothing? 모든 것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것. 여기선 둘 다 NO다. 서로 경쟁하여 한명이 쟁취하거나 포기하는 어느 쪽도 아니다. 새로운 사랑의 해법을 제시한다. 놀랍게도 다른 남자와 함께 사랑하는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 그러나 그 도저히 불가해한 반쪽사랑이 오죽 가슴 아플까.

그러나 김하늘은 가슴 아플까? 그녀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비추던 것과 많이 다르다. 그간 청순하고 조용조용 목소리를 낮추던 것과는 달리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이미지다.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라. 튼튼한 발을 가진 늑대 같은 여자다.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네발 달린 짐승 늑대. 이들은 예민하면서 장난끼 있고 강한 희생 정신을 가졌다. 그리고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환경 친화적인 존재다. 일반적으로 여배우의 외모만 가지고 여우에 비유하지만 기질적으론 늑대와 흡사하다.

두 남자를 가지고 웃어대는 김하늘은 자유로운 늑대의 영혼 그것이다. 그늘 한 점 없이 매끈하게 꾸려나가는 삼각관계. 너도 좋고, 그 사람도 좋고. 남자들은 그녀에게 단단히 묶여있지만 그녀는 언제든 다른 곳으로 달려갈지 모른다. 두 남자에겐 뼈아픈 얘기가 되겠지만 그녀의 마음을 절반조차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광고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와 훔친 듯이 닮아있다. 아이디어를 이 영화에서 따온 것 같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기묘한 공유 관계. 남자는 이렇게 읊조린다. "당신을 잃는 것보다 절반을 갖겠다." 하지만 두 남자는 불행하게 죽는다. 온전히 가지지 못한 사랑의 슬픔이 죽음에까지 이끈 걸까?

파격적인 사랑의 형태 레쓰비. 커피는 향기롭지만 바닥에는 쓴 맛이 깔려있다. 마치 사랑처럼. 제아무리 새로운 감성으로 무장한 신세대라도 공유하는 사랑을 견뎌낼 수 있을까.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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