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LA리포트]'카우보이' 만리장성 넘을까

  • 입력 2001년 4월 10일 19시 02분


드디어 '카우보이'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백악관 입성 후 다른 나라들은 아랑곳없이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밀어부치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첩보기와 중국 전투기 충돌 사건으로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사실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해 국제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국제사회와의 '조율' 노력을 버리지 않았다면 부시 대통령은 '낡은 힘의 외교'로 돌아가 안하무인이 돼버린 느낌을 국제사회에 심어줬습니다. 이같은 카우보이 스타일은 그의 첫 주요 외교정책이 이라크 공습이었다는 것이 잘 보여주었습니다.

▼美외교 어깨힘 뺄 가능성▼

이런 스타일은 부시 외교정책의 윤곽이 드러난 뒤 차분하게 이에 대응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시아 정상 중 처음으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선전효과를 노리고 성급하게 정상회담을 추진한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햇볕정책에 흠집만 내는 결과를 가져다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시 정부는 탈냉전에 따라 인류가 소모적인 군비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핵제한협정인 ABM(탄도탄요격미사일) 협정을 탈퇴해서라도 허망한 꿈으로 끝난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의 스타워스 프로그램을 되살리는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나서는가 하면 지구 생존의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지구온난화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합의한 유엔기후협약 교토의정서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밀어붙이기식으로 국제사회를 휘젓던 부시 대통령이 우발적인 미·중 군용기 충돌사고로 억류중인 미군들의 송환을 위해 중국 정부에 직접 유감을 표시하고도 보다 구체적인 사과를 하라는 중국의 주장에 시달리는 작은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의 설명입니다. 즉 실종된 중국 비행사가 평소 미국 정찰기에 대해 무모한 근접비행을 시도해 미국 관계자들 사이에 '카우보이'라는 별명을 얻은 문제아라는 것입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세계 정치의 카우보이가 중국 공군의 카우보이에 의해 제동이 걸린 셈입니다.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일회성 사고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상기해볼 가치가 있는 것은 미국의 패권에 의해 천하가 평정된 21세기 세계질서에 있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중국이라는 많은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 국제무대에서의 부시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사태가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고로 생겼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 이상의 상징적인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앞으로 미칠 영향도 짚어봐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미중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워싱턴의 중론입니다만 미중 관계 못지 않게 관심이 가는 것은 부시 정부의 전반적인 외교정책에 미칠 영향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부시 대통령이 국제무대가 황야의 무법자식으로 힘으로만 밀고 갈 수 있는 단순한 곳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우고 보다 온건한 노선으로 방향전환을 하기를 기대해 보지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군수업체 등 군산복합체 관계자들이 부시팀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이번 사건이 NMD가 필요한 이유로 악용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즉 울고 싶은 데 빰을 때려준 격으로 NMD를 추진할 명분이 약한 데 이번 사건이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NMD명분 강화 우려도▼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최첨단 정찰기의 기밀이 노출됐으니 막대한 돈을 들여 새로운 정찰기를 개발해야 할 핑계까지 생긴 셈입니다. 사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부시 정부가 현실을 파악하면 햇볕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햇볕정책에 대한 부시 정부의 거부 반응 역시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보수성을 넘어서 군수업체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NMD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명분으로 북한이라는 불량국가가 필요하다는 자본의 논리에 연유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손호철(서강대 교수·현 미UCLA 교환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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