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엽기 소녀'의 돈 찾아 삼만리<비밀의 화원>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45분


명랑 만화를 닮은 일본 코미디 영화 <비밀의 화원>은 이상한 방식으로 한국에 먼저 상륙했다. 감독 및 주연 교체 사건을 겪었고 흥행에도 실패한 구임서 감독의 99년작 <산전수전>. 이 영화의 원안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엽기 코미디 <비밀의 화원>이다. 신과 신의 연결, 카메라의 각도까지 <비밀의 화원>을 그대로 베껴온 <산전수전>은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비밀의 화원>과 달랐다. 작가정신이 엷어졌고 엽기성도 줄었다.

<산전수전>이 어설프게 베껴버린 <비밀의 화원>은 '만화 커트'의 집합체처럼 발랄한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엽기 소녀가 5만 엔이 든 가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정말 '눈 뜨고 못 봐줄 만큼' 웃긴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돈 세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여자 사키코(니시다 나오미).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으면 "데이트 비용을 차라리 내게 달라"고 졸라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그녀는 나이가 들어서도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님의 권유로 돈 세는 일이 주업인 은행원이 되긴 했지만 어느 날부터 그녀는 그 일에도 심드렁해진다. "아무리 돈을 세도 그 돈이 절대 내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즈음 드디어 사키코의 인생을 바꿔줄 만한 멋진(?) 사건이 발생한다. 5만 엔을 훔친 은행털이가 사키코를 인질로 잡아 산으로 데려갔는데 정작 사키코는 살아남고 은행털이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것이다. 사람들은 5만 엔이 자동차 폭발과 함께 모두 타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키코만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5만 엔이 든 가방이 강물 깊숙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때부터 사키코의 인생 목표는 강물 속에 잠긴 5만 엔을 찾는 것으로 바뀐다.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수영 및 등산을 배우는 게 아니라 단지 숲속에 숨겨진 5만 엔을 찾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사키코. 목표는 이상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결국 교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장학생 겸 수영 및 등산을 섭렵한 멋진 여성으로 거듭난다.

사키코의 물불 안 가리는 '돈 찾아 삼 만리'는 가히 엽기적인 수준인데 이건 물론 사키코만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여자 뒤꽁무늬만 쫓아다니는 지질학과 조교 에도가와(리루 고), 돌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지질학과 교수 모리타(나이토 다케토시) 등. 모든 캐릭터들이 만화책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과장된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동경 조형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아티스트 출신. 전직 미술학도답게 <비밀의 화원>의 몇몇 미니어처를 직접 제작하며 재주를 과시했으나 솔직히 그가 만든 미니어처는 '가짜'라는 티가 팍팍 날만큼 조악한 수준이다. 그게 또 이 영화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중성적인 여자아이의 자아 실현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 언뜻 훌륭한 페미니즘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고상한 대입은 <비밀의 화원>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 영화는 웃고 즐기는 사이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 만화책처럼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봐야 제격이다.

(감독 야구치 시노부/주연 니시다 나오미, 리루 고, 나이토 다케토시/개봉일 4월7일/러닝타임 83분/홈페이지 http://www.secret-garden.co.kr)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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