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칼럼]신뢰사회의 구축을 생각하며

  • 입력 2001년 3월 20일 17시 17분


21세기의 첫해 3월에 생각해본다.

지난 1세기의 이 땅은 치욕적인 한일합방, 민족간의 전쟁인 6.25, 군사통치기, 그리고 국가적 위기까지 이르렀던 경제적 혼란기를 겪었다.

이러한 수많은 국가적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기초질서 확립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배우는 사회적 규범을 이 땅의 성인들에게 향하여 목청 높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몇 일전 아침 신문 독자란에 한국인 남편을 둔 어느 주한외국인이 교통질서를 안 지키는 '어글리 코리언들'에 대하여 아픈 소리를 하고 있다.

아마도 몇 년 전, 아니 몇 십년 전 신문 어느 컬럼 난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왜 아직도 우리는 교통질서조차 못 지키는 민족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자문해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87년 6월 항쟁이후 시민단체의 활동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면 당시의 상황은 시민혁명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동강댐건설반대운동', '공선협', '총선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보면 정치권도 경제계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시민사회의 논리가 중요하게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기초질서를 지켜야 하는 시민의식도 시민단체의 활동만큼 성장한 것인가?

현대 일본의 정치사상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 학자였던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南)는 서양의 근대화와 일본의 근대화의 가장 큰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양에서의 자본주의 혁명 및 시민혁명은 개인화를 가져왔으나 이는 남의 권리도 존중할 줄 아는 프라이버시(privacy)로 성장하였고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개인화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로 흘러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개인화와 이웃 일본의 개인화는 물론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일본의 개인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가족주의, 혈연주의 등의 연고주의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적인 한국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의 NGO들이 시민의 책무 및 민주시민으로서의 덕목을 강조하여 한국의 신뢰사회를 구축하는 운동을 전개하여야 할 때라고 본다.

아울러 이러한 신뢰사회의 구축은 많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우체국의 집배원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으나 1인당 배달의 효율성은 미국, 일본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붙인 우편물이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는 확신을 못 갖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등기우편을 이용하는 비율이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만큼 많은 인원의 집배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주소지의 불규칙적인 地番나열은 그 지역에 대한 충분한 습득을 하지 않는 한 주소를 보고 집을 찾는 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며, 일부 사람들에 의한 타인의 우편물훼손, 우편물 도난 등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따라서 보다 안전하고 신속한 배달을 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세금으로 지금과 같이 많은 인원의 집배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의 한 줄 서기를 위하여 계도원이 아직도 필요한 상태이며 무임승차, 지하철구내에서의 일부 승객들의 무질서는 현재와 같은 많은 역무원을 역시 필요로 하고 있다.

독자들 가운데서도 독일의 지하철, 미국 워싱턴의 지하철, 캐나다의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있다면 느낄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의 역무원의 수는 극히 적으며 우리와 같은 자동 개찰구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아무도 차표를 검사할 것 같지 않으나 불시에 검문해서 무임승차 내지 초과승차인 경우에는 상당한 벌금액을 내지 않으면 안되며 외국인의 경우에는 심지어는 추방까지 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밖에 미국, 일본, 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외국에 나가서 은행에 가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알 것이다.

대부분의 은행업무는 자동기계로 처리되며 극히 일부분의 업무만 창구직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은행원이 확인을 필요로 하는 업무가 많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신뢰사회의 구축이 안되면 이와 같이 눈에 표나지 않는 곳에서 많은 우수한 인력들이 단순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지식인들간의 경쟁사회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우리의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공공부분의 개혁을 미진케 하는 것은 아닌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하루종일 지하철 역구내에서 차표나 팔고 있는 역무원, 돈 다발을 세고 있는 업무에 시달리는 은행원, 동사무소에서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는 대학졸업의 우수한 공무원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신뢰사회의 구축은 단지 시민들의 기초질서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정부는 신뢰사회 구축을 위한 노력을 정부 스스로가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최근에 노점상의 난립, 불법광고물의 범람 등 기초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정부가 개탄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으나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그 동안 법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집행되었는 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지도층들의 비리가 소문을 낫고 소문이 확실한 것으로 되는 과정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일부 자치단체이기는 하지만 선거를 의식하여 기초질서의 문란을 방조하지는 않았는가.

정부나 시민 모두 그 동안 정치체제의 민주성만 요구했지 정작 우리 사회의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이 결핍되어 있지는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하여 '등기우편 사용 안 하기 운동', '지하철 개찰구 폐지운동', '법의 공정하고 엄정한 집행을 위한 시민운동 ' 등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임승빈/순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lim08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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