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승객 지갑분실까지 대비한 대전역 공안원

  • 입력 2001년 3월 19일 18시 26분


며칠 전에 가슴 훈훈한 일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과 그 사연을 공유하고 싶어 글을 쓴다. 나는 직업상 기차를 자주 이용한다. 얼마 전 서울 영등포역에서 밤 10시42분에 출발한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내리니 자정이 넘었다. 그런데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는 몰라도 지갑이 없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했던 나는 공안실을 찾게 됐다. 공안원은 허둥대는 내게 뜨거운 차를 한 잔 주며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 신용카드 분실 신고를 해야 한다고 일러줬다. 순간 나는 현금이 문제가 아니라 대여섯개나 되는 신용카드가 더 문제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 공안원은 책상서랍에서 전화번호가 가득 적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신용카드회사 전화번호 일람표였다. 철도청에서 이런 전화번호까지 역마다 내려보내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공안실에 지갑 분실신고하는 사람이 많기에 필요할 것 같아서 스스로 준비했다고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나는 감동했다. 그는 감사인사를 하고 나오는 내게 돈도 없을텐데 택시를 타고 가라며 주머니에서 5000원을 꺼내 주었다. 다음날 갚으러 오겠다고 했더니 다음에 올 기회가 있으면 천천히 갚으라고 했다. 지갑을 분실해 속은 상했지만 이런 분이 있는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옥희(대전 대덕구 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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