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최선열교수 제자들에 '사과의 편지'

입력 2001-03-11 18:41수정 2009-09-2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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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졸업생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4년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밀레니엄 졸업생’ 운운하며 21세기 장밋빛 미래에 대한 벅찬 희망을 안겨주었던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가 이렇게 씁쓸하게 시작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대졸자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최선열(崔善烈)교수가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과 정부의 인적자원 관리 정책을 질타하는 글을 발표해 화제다.

최교수는 이화여대생들의 시사웹진 ‘듀’(http://dew.ewha.ac.kr) 3월호에 실린 ‘2001년 졸업생들에 대한 사과’ 칼럼에서 “2월 졸업식 때 학생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할까봐 땅만 보면서 다녔다”며 “특히 올해 졸업생들에게 미안한 것은 이들이 학부제 도입 과정에 입학해 적절한 지도를 받지 못하고 거의 방치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교수들은 과도한 수업부담과 연구업적 평가에 대한 스트레스, 잡무와 보직에 시달리다 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수많은 ‘길잃은 양’을 보면서 모른 척 해왔다”며 “나도 보직에 얽매여 있다는 핑계로 고민을 들어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최교수는 이어 대학원 졸업생들에게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취업난을 피해 경제가 나아지면 사회에 나가야겠다며 진학한 학생들이 2년 전 계산과는 너무 다른 ‘결산’에 얼마나 당황하겠는가”라며 “많은 등록금을 투자해온 학부모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대졸자 취업률 전망과 관련, “올해 일반대 졸업자의 취업률이 53.4%라고 하지만 실제는 훨씬 낮을 것”이라며 “일부 대학은 사회적 평판을 의식해 고시나 언론사 입사 준비생 등 대기 취업자까지 취업률에 포함시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대졸자 취업 통계는 믿을 수 없는 행정통계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교육부가 취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도 없이 졸업생수 대 취업자수 비율만을 대학에 요구해 하향 취업까지도 취업률에 포함시키는 나쁜 관행이 만연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최교수는 대졸 취업난의 근본 원인이 불황 탓만이 아니라 고급인력 관리의 총체적 실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도한 교육열 때문에 ‘표류하듯’ 대학에 들어와 4년간 방황하다 나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학들이 인재를 제대로 육성할 만한 인원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을 받고는 4년간 방목하듯 내버려둔다고 생각합니다. 허울좋은 연구중심, 대학원 중심 대학을 목표로 대학들이 대학원 정원을 마구 늘려 이제는 아무 생각없이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학부같은 대단위 수업도 많고 교수당 논문지도 학생 수가 많아져 대학원 교육의 질이 떨어졌습니다.”

최교수는 석사 박사실업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고급인력의 체계적 관리 △교육부가 아닌 대학 주도의 구조조정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글을 맺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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