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3월 7일 18시 4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사회주의 체제 당시의 검열과 같은 국가의 노골적인 간섭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세무조사와 같은 지능화된 방법으로 여전히 언론을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통제 방식이 한층 교묘해진 셈이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 등 국제언론단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 등에서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정부의 언론탄압이 계속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최대의 민간 언론그룹인 미디어모스트에 대한 탄압이 대표적 사례. 3대 전국 방송의 하나인 NTV와 일간지 세보드냐, 시사주간지 이토기(뉴스위크 러시아어판) 등을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모스트그룹은 1년 넘게 계속돼온 정부의 탄압으로 지금 심한 경영난에 빠져 있다.
당국은 지난해 사주(社主)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회장을 비리 혐의로 구속한 뒤 미디어모스트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 후 구신스키 회장은 석방돼 스페인으로 도피했지만 자금책임자인 안톤 티토프는 여전히 감옥에 있다. 법무책임자인 알렉산드르 폴로스카는 5일 가택수색을 당했다.
더욱이 당국은 국영기업인 가스프롬이 미디어모스트그룹에 대해 갖고 있는 거액의 채권을 빌미로 경영권마저 뺏으려 하고 있다.
이 같은 당국의 탄압은 그동안 미디어모스트그룹 계열의 언론매체들이 푸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데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구신스키 회장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이 벌어졌을 때 푸틴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에게 미움을 샀다.
미디어모스트그룹을 압박하는 러시아 당국의 행태는 과거 구소련 때의 탄압과 비교하면 훨씬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인에 대한 구금과 폭행 등 직접적인 폭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론 관련 단체인 글라스노스트재단(GDF)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서는 언론인 16명이 살해되고 26명이 각종 혐의로 기소됐다.
▽우크라이나〓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이 집권해온 지난 6년 동안 각종 언론탄압이 계속돼 왔다. 급기야 지난해 9월 반체제 언론인으로 인터넷 신문인 우크라이나프라브다의 편집인이던 그리고리 곤가드제가 실종돼 석달 뒤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 터지면서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이 사건 직후 야당인 사회당은 곤가드제씨를 살해하도록 지시하는 쿠치마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공개했다. 쿠치마 대통령은 이 테이프가 변조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수천명의 시위대가 수도 키예프 등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야당들이 쿠치마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정국이 위기로 치닫고 있다.
쿠치마 대통령은 99년 미국의 언론인보호위원회(CPJ)로부터 ‘가장 심하게 언론을 탄압하는 세계지도자 1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체코〓지난해 말 밀로시 제만 총리와 바클라프 클라우스 전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순전히 정치적인 고려에서 국영방송인 체스카텔레비제(CT) 신임 사장을 임명해 언론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남겼다.
내년 대선에 출마할 예정인 클라우스 전 총리는 미리 국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측근인 이리 호다치를 새 사장으로 임명한 것.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파업과 10만여명에 달하는 시민의 항의 시위가 잇따랐다.
결국 호다치 사장의 사임으로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올 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는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위협한 대표적 사례로 이 사태를 꼽았다. 또 IPI는 이를 계기로 공영방송 책임자의 정치적 임명에 반대하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