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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6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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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허둥대는 이유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새로운 외교정책이 우리의 대북정책과 마찰을 빚게 될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의 ‘문제 제기’는 오래 전에 예견된 일로서 다소 때늦은 감은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 외교정책 전반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대북관계라는 극히 한정된 시각에서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관계 상충 직시하길▼
김대중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하려는 일은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나는 미국측에 북한의 변화를 설명하고 햇볕정책의 적실성을 설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미 공조체제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추상적 의미의 ‘원론적 합의’ 외에 실속 있는 방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북한의 변화는 설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미국은 지금 우리에게 설득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정보 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 그들이 모르는 어떤 사실에 근거해서 북한의 변화를 설명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또한 북한의 변화 여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객관적 입증이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평가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제다. 정부는 김위원장의 상하이(上海) 방문 자체를 획기적 변화로 해석하는 반면에, 그가 ‘천지개벽’으로 묘사한 중국의 변화조차도 미국은 성에 차지 않아 인권문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질적 변화의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단국 한국의 통일정책이 현상 타파적이라면, 미국의 외교정책은 현상유지 내지 원상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이 진정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 그 자체라기보다는 동북아지역에서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국의 ‘전략적 위상’이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이 그 의도와는 달리 중국 중심의 동북아 질서 구축을 허용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과 암묵적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패권 경쟁의 대상국인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 상황을 미국으로서는 결코 묵과할 수 없다.
중―미 갈등의 최대 뇌관이 대만문제라면, 미국 중심으로의 동북아 질서 회복을 위한 첫 번째 카드가 바로 북한이다. 역내에 ‘불량배’가 없다면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의 역할도 더 이상 명분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위험한 북한’이 한반도 문제 개입의 명분과 동북아지역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미국에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비록 전략적 차원이나마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제기되는 북한 위협론은 1990년대의 중국 위협론에 비해서도 훨씬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설득보다 조정 추구해야▼
따라서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하며 또 우리에게 최선의 방책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물론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약 탈냉전 시기에 미국이 말하는 동맹이란 향후 가시화될 것으로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중―러―북한간의 연합전선에 대응해 한국을 묶어 둘 수 있는 효과적인 끈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한미동맹은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제한하는 구속틀의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설득과 공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미국에 대해 이해관계의 조정과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설득을 위한 논리가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전략적준비라고 하겠다.
전성홍(동덕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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