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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1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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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화된 만남없인 한 못풀어▼
생사와 주소를 확인한 사람까지 합하면 6000명 이상이 직간접으로 가족의 소식을 들었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북측요원들의 자세가 유연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북측의 정책 변화의 일단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사업은 당초 두세번 에 걸쳐 '시범적으로'라는 단서를 달고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는 당분간 4차 상봉은 기약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생사 및 주소 확인과 상봉을 신청한 사람이 남쪽에만도 11만명이 넘고 이산의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뜨는 이산 1세대 노인들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시범적 상봉이나마 기약이 없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물론 생사나 주소가 확인된 남쪽 300명 북쪽 300명의 편지를 15일 교환하게 돼 있고, 4차 적십자회담이 4월 3∼5일로 예정돼 있어 불씨는 살아있는 셈이다.
한편 그 동안 많은 사람이 교환방문이나 상봉 방식의 이산가족 사업에 대해 불만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우선 희망자에 비해 숫자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이산 1세대들이 고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행사성이 되다 보니 경비문제도 만만찮고, 체제선전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도 흠으로 지적돼 왔다.
상봉단 교환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고 부담이 되는 문제점이 있다면, 문제점을 풀기 위해서라도, 상설 면회소와 우편물 교환소를 운영하는 쪽으로 이산가족 사업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면회소는 지난 해 6월 말 1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9월 초 적십자회담을 열어 면회소 설치 운영을 협의 확정한다"고 합의했는데도 협의가 늦어지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면회소 설치장소가 문제인 것처럼 돼 있지만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쪽과의 협상에서 내놓을 것이 별로 없는 북의 입장에서 면회소 설치는 여러 개로 쪼개 쓸 수 있는 큰 협상카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대가를 줘야 면회소 사업이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인도적 사업에 웬 대가냐"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북으로서는 이산가족 사업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최소한 실(失)보다는 득(得)이 커야 적극성을 보일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3차 상봉 때 장재언 북한적십자사 위원장이 "흩어진 가족들의 서신교환이 시범적으로 진행되고 조만간 면회소가 설치될 것"이라고 한 만큼 4차 적십자회담을 기대하지만, 어떤 조건에서 북이 면회소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올지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도 어려운데 무엇을 또 퍼주느냐"라고 비판만 해서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여러 번 만나고 오랜 시간 함께 있을 수 있는 상설 면회소 방식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풀려면, 자신이 이산가족이 아니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북이 남에 잘해야할 때▼
우편물 교환소도 있어야 한다. 한번 만나고 끝날 일도 아니고, 건강 등의 이유로 매번 만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면회소와 보완적인 시설로서의 우편물 교환소는 꼭 설치돼야 한다. 그동안 미뤄온 서신교환이 3월중에 시범적으로 시작될 예정이지만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제도화 차원에서 4차 적십자회담부터는 우편물 교환소 문제도 본격 협의돼야 한다.
요즘 북쪽 인사들이 부쩍 "금년이 중요한 해"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남쪽이 북쪽에 잘해주기를 기대하는 함의(含意)가 있는 것 같은데,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 등 주변정세를 보더라도 금년이야말로 북쪽이 남쪽에 잘해주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이산가족 문제에서의 협조적인 자세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정세현(전 통일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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