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무리한 부킹’ 이제 그만

  • 입력 2001년 2월 19일 18시 48분


폭설로 무너진 비닐 하우스. 그 옆을 매일 지나는 내 속도 편치 않은 데 주인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새들의 날갯짓도 안쓰럽고. 하긴 마당이며 큰길까지며 겨우 통로만 내고 지내는 내 모습도 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누군들 다르랴. “어, 3월에는 개장할 수 있을까. 비가 한번 오면 좋을 텐데” “경기보조원들도 하루 얼마씩 받고 눈을 치운다며?” “연습장도 당분간 문을 못 연다는데” 좀이 쑤신 듯 한마디씩 하는 골프애호가들의 마음은 새봄의 필드에 가 있을 터이고.

봄이 오면 골프애호가들이 편안하게 골프를 즐겼으면 좋겠다. 폭설에 움츠러들었던 세상의 다른 일들도 잘 풀려야 하겠지만.

그런데 정말 골프애호가들이 웃으며 새봄을 맞을 수 있을까. 답부터 말하면 ‘글쎄올시다’이다. 이유야 뻔하다. 골프인구가 골프장수에 비해 많은 탓이고, 금세 해결될 일도 아니니 말이다. 지난해 전국 108개 골프장에는 연인원 1240만명이 찾았는데 이는 10년 전의 3배나 되는 수치이다.

왜 골프인구가 급증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로 분석되겠지만 나는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최경주 같은 스타의 출현을 먼저 꼽는다. 그들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치성 스포츠라는 과거의 인식을 바꿔 놓는데도, 1999년 10월 11일 대통령의 골프대중화선언에도 크게 기여했다. 골프에 대해 보수적 시각을 가졌던 언론도 더 이상 종래의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게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

이들의 파급효과는 선수의 증가로도 확인된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748명이었던 골프선수는 1995년을 전환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5512명이나 됐다. IMF체제 한파에도 골프선수는 늘었다. 지난해 축구와 야구 등록선수가 1988년의 1.8배와 1.2배였던 점을 보면 증가세를 알만하지 않은가.

다소 과장됐다고 여기지만 겨울철 호주와 태국 등지에서 골프 연수를 한 학생이 5000명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부모의 골프 사랑 때문일까. 자녀에 대한 투자일까. 아무튼 선수가 늘고 경쟁하는 것은 어른 골퍼의 증가와 관심도의 반영일텐데 박세리 등의 활약에 따른 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골프인구의 증가 및 사회적 시각도 변화시킬 수 있는 스타의 활약. 새봄 새로운 스타가 기다려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게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골프애호가들에게 한 말씀 올리고 싶은 게 있어 그렇게 뜸을 들였다. 부킹의 어려움은 알지만 ‘무리’하지 마시라는 말씀이다. 마침 정부도 대중골프장 건설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니까.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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