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하춘화, 노래인생 40년 "잘했군 잘했어~"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34분


가수 하춘화(46)가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공연을 갖는다. 그는 여섯 살때인 1961년 공식 음반 ‘효녀 심청 되오리다’를 내고 최연소 가수로 데뷔했었다.

그는 1월 31일 서울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따로 따로 사랑’ 한 곡을 다시 녹음하는데 1시간 넘게 정성을 들이며 “노래와 평생 호흡하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끝이 없다”라고 말했다.

공연은 지난해부터 준비했다. 공연 준비를 마무리하느라 너무 바빠 귀걸이를 한 쪽만 한 것도 모른 채 나왔다는 그를 만나 노래와 인생 40년 이야기를 들었다. 공연은 23일 오후 7시, 24일 오후 4시, 7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789―3727

<가수가 되다> 세 살때 이미 노래를 300곡이나 부를수 있었던 그는 가요 내력이 없는 집안에서 돌연변이였다. 아버지 하종오(80)씨가 딸의 미래를 내다보고 ‘맹꽁이 타령’의 작곡가 형석기씨의 권유를 받아들여 음반을 냈다. 데뷔와 동시에 황금심 김정구 등 선배 가수들과 서울 충무로 시공관에서 공연해 화제가 됐다.

<첫 히트곡> 16세때인 71년 ‘물새 한 마리’가 빅히트했다. 한때는 이 노래가 데뷔곡으로 알려져 경력이 10년 차이가 나게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대학 졸업한 뒤 본격 활동을 하려 했는데 히트하면서 떠밀리다시피 ‘전업’ 가수로 나서게 됐어요.”

고등학교(일신여상)때 전교 수석 학생이었던 그는 이후 파월장병 위문공연, 영화 ‘세노야 세노야’출연, 수차례의 대형 리사이틀 공연 등으로 쉼없는 노래의 퍼레이드를 펼친다.

*'리사이틀 여왕' 공연만 5000회

<전성기> 하춘화는 70년대 전성기 시절 ‘잘했군 잘했어’ ‘영암아리랑’ ‘연포아가씨’ 등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당시 유행했던 극장식 ‘리사이틀의 여왕’으로 불렸다.

“천가지의 목소리와 만가지의 재주를 가진 가수” “노래와 무용, 재기넘치는 몸짓을 지닌 만능 탤런트” 등이 그에 대한 평가. 요즘 말로 하면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셈이다.

특히 리사이틀로 세운 기록은 획기적이다. 74년 부산 도림극장의 공연때는 2000여석의 객석에 1만 2000여명이 몰려 ‘언니 부대’의 실체를 알렸고 91년 공연 횟수 1260회로 세계 기네스북에 올랐다. 지금까지 크고작은 공연 횟수가 5000여회, 취입한 노래는 2000여곡이라고 그는 밝혔다.

<별난 수집벽> 시계와 칫솔을 수집한다. 시간을 지키려는 버릇 때문에 집안 곳곳에 시계를 둔다. 시계를 차지 않은 사람을 싫어할 정도다. 칫솔 수집은 기분이 안좋을 때마다 양치질을 하는 습관에서 비롯됐다. 신제품이 여러개 나오면 한꺼번에 사서 성능을 비교해 본다.

<건강관리> 매일 헬스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가수는 파워가 있어야 호소력이 있기 때문에 건강이 매우 중요하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여늬 연예인과 다르다. 오전에 녹음할 수 있는 가수는 그가 유일하다. 골프도 한때 싱글까지 쳤으나 요즘은 90대 초반.

<아버지> 하춘화는 자기 관리가 깔끔하다. 스캔들이 거의 없다. 그는 한마디로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하종오씨는 딸이 서른살이 될 때까지도 기자를 대신 만나는 바람에 “딸을 유리관속에 둔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하춘화를 비롯해 가요관련 기사를 거의 빠짐없이 스크랩해 20여권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도 하춘화 홈페이지(www.ha77777.net)를 만들어 관리한다.

*대중음악 전문학교 설립 꿈

<남편> 늦게 중매로 만나 95년 5월에 결혼한 남편 이인순씨(KBS 출판부장)는 아내의 활동에 대해 이해심이 깊다. 다만 하춘화의 수집벽이 유별나 “짐 때문에 못살겠다”는 하소연이 불만의 전부다. 그는 “아직 아이가 없어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결혼 뒤 임신했으나 유산했다. 친정 어머니가 “요즘은 쉰둥이도 흔하니 걱정말라”고 위로해준다고.

<꿈> 대중음악 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싶다고. 지난해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한국 가요의 원류와 변천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것도 교육자의 길을 위한 준비다.하춘화는 “전통 민요에 뿌리를 둔 ‘한국가요’ 가수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이화자 황금심 박재란 등이 그의 노래의 뿌리라고. 특히 황금심씨는 지금도 “춘화야! 네가 있어 참 든든하다”고 격려 전화를 준다. 그는 “황금심씨는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를 가진 가수로 그 분의 목소리를 잃게 만든 세월이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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