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별볼일 없는 ‘귀족카드’…비싼 연회비 체면치레용

  • 입력 2001년 1월 29일 18시 40분


대기업 임원 A씨(46)는 재작년말 망년회에 다녀온 뒤 플래티넘카드를 새로 마련했다. 친구가 ‘제일 좋은 카드’를 갖고 있다며 자랑하자 부러웠던 것이다. 연회비가 무려 12만원이었지만 혜택이 많다는 얘기에 솔깃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A씨 눈에는 플래티넘카드가 ‘연회비만 비싼 카드’로만 보일 뿐이다.

반면 작년 10월에 정년퇴직한 B씨(56) 부부는 최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플래티넘 카드 덕분에 30만원 이상을 절감했다. 부인이 공짜 비행기(14만8000원)를 탔고 투숙한 제주 특급호텔의 하루치 방값(26만원)을 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B씨는 “비싼 만큼 제 값을 한다”고 흐뭇해했다.

귀족카드로 불리우는 ‘플래티눔카드’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잘만 이용하면 본전을 뽑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싼 연회비만 물고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보다 비쌀 순 없다〓가장 보편적인 플래티넘 카드의 연회비는 12만원이다. 가장 연회비가 싼 2000원짜리 일반 카드에 비하면 무려 60배나 비싸며 해외사용 기능을 갖춘 골드카드 연회비 1만원의 12배에 달한다.

이쯤 되면 엄청난 혜택이 있을 법하다. 연회비가 12만원인 BC플래티넘카드의 경우 △국내선 왕복항공권 △제주 특1급호텔 숙박권 △공항 귀빈라운지 이용 △종합보험서비스 가입 등 제공되는 무료 특별서비스 가짓수가 10여가지가 넘는다. BC카드 한정섭 대리는 “플래티넘 특별서비스를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50만원 상당”이라며 “제주도 왕복항공요금 한가지만 따져도 14만8000원이라 단숨에 연회비를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특별서비스는 사고를 당해야만 혜택을 받는 보험가입을 제외하곤 대부분 조건부다. 플래티넘회원이 비행기를 타야 동반자 1인에 무료항공권이 주어지며 호텔에 투숙하더라도 2일 이상 머물러야 하루 방값을 빼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해외 여행이나 출장을 많이 다니고 호텔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카드덕을 보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과분한 카드인 셈이다.

▽진퇴양란에 놓인 플래티넘 마케팅〓플래티넘카드 개발당시 타킷층은 해외출장이 잦은 비즈니스맨이었다. 장기 출장길에 오르거나 해외에서 행사를 열려면 사용한도가 부족하기 때문. 그러나 유난히 체면에 집착하는 국내 정서와 맞물리면서 플래티넘카드는 어느새 ‘부의 상징’으로 변질됐다. 혜택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에 속하고 싶은 욕심이 가입을 부추기고 있는 것. 도입 초기 가입자 확보에 열을 올렸던 카드사들은 요즘 광고 등 마케팅활동을 사실상 접었다. 특별서비스 이용율이 높아지면서 나가는 비용이 연회비 수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값비싼 서비스를 마구잡이로 포함시키는 바람에 조만간 회비를 인상하거나 서비스 수준을 낮춰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서 “서비스질을 떨어뜨리거나 회비를 올리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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