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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월 12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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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근리사건이 99년 국내외 언론의 보도로 이슈화된 후 한미 양국이 각기 진상조사를 벌이고 조율한 끝에 나온 이 처리 방안은 매우 미흡하다. 무엇보다도 발포의 경위 및 책임자에 관한 진상 규명과 그에 따른 유가족 보상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측이 사망자를 248명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미국측은 100명 안팎이거나 50명선으로 낮추어질 수도 있다고 한 것부터가 진상조사가 제대로 안됐다는 증거다.
발포명령자와 관련, 당시 미 제5공군의 터너 로저스 대령의 메모는 “육군이 미군진지로 접근하고 있는 모든 민간 피란민들에게 항공기로 기총공격할 것을 요청했으며 공군은 그런 요청에 응해 왔음”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또 미 조사반에서 일부 증언자들도 사격명령이 반드시 하달됐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는데도 발포책임자가 규명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코언 미 국방장관의 발표문은 “전쟁 초기 미군은 젊고 훈련되지 않았으며 북한군 전술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책임소재를 포괄적으로 전쟁상황 자체에 돌리고 있다. 거기다 “우리(미국)의 전쟁 노력이…오늘날 한국이 누리고 있는 번영과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한 대목은 학살의 책임을 호도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그러나 미국의 6·25참전은 한미양국의 공동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국무총리실 산하 노근리사건대책단이 미국측의 유감표명을 ‘사실상의 사과’라는 등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따지기보다는 마무리짓는 데 급급한 인상이다.
이제 유가족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이는 권리를 찾기 위한 정당한 법적 절차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지원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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