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세금횡령부터 따져야

  • 입력 2001년 1월 8일 18시 31분


“집권당 사무총장이 근거 없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95년 11월 당시 신한국당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은 김대중(金大中) 당시 국민회의 총재가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에게서 20억원 외에 ‘α’를 더 받았다고 폭로했다.

총선을 반년여 앞두고 야당과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던 당시 여당은 총선 전략의 하나로 유력한 야당 총재에게 흠집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이 발언으로 인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자 “그저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말한 것일 뿐”이라며 자신의 주장이 근거 없는 ‘정치공세’였음을 시인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검찰 수사에 따르면 야당 총재의 비자금 수수를 비난했던 그는 그때 안기부 돈 940억원을 집권당의 총선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강의원은 이 같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여당의 정치공세’라고 반박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로 드러난 사실이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정치공세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이미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당시 신한국당에 돈을 전달한 사실을 시인했다. 검찰은 8일 “돈이 전달된 계좌는 강의원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돈은 기업에서 조달된 통상의 정치자금과는 다르다. 검찰발표에 따르면 이는 국민 개개인이 국가에 낸 혈세였다.

즉 이번 사건의 본질은 ‘세금 횡령’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정치 보복’이니 ‘피의사실 공표’니 하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내세우며 본질을 덮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그동안 여당의 비리는 덮고 야당의 비리는 열과 성을 다해 파헤쳐 온 검찰의 태도가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문제는 그것대로 따져야 한다. 국민세금을 훔친 범죄행위가 드러난 이상 철저한 진상 규명과 단죄, 그리고 반성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푸는 것이 먼저다.

신석호<사회부>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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