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석학대담]佛 피에르 레비교수-김동윤교수

  • 입력 2001년 1월 7일 18시 02분


새해 석학대담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사이버 스페이스의 문화, 인공지능, 전자 민주주의 등과 관련해 활발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피에르 레비 교수로부터 새 세기의 전망을 듣는다. 지난 연말 아트센터 나비(서울 종로구 서린동) 개관기념 학술강연을 위해 내한한 그를 김동윤 교수가 만났다. <편집자>

▽김동윤 교수〓교수님은 일찍부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사이버 공간의 운영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 전망을 해 왔습니다. 저서인 ‘사이버 문화’(1997)에서 예견하신 것이 상당부분 실현됐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정보 쓰레기의 과잉, 빅 브러더들의 사이버 공간 점령 등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어요.

▽피에르 레비 교수〓인류 역사를 보면 일정한 진보의 방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 방향을 ‘집단적 지성(colletive intelligence)’과 ‘자유’라는 두 가지 용어로 정의합니다. 예컨대 한국은 오랫동안 군사독재 정권 아래 있었지만 오늘날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보이고 그 방향은 ‘자유’로 가는 것입니다. 독재정권에서 민주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실현이고, 이것이 ‘집단적 지성’의 한 예입니다.

‘지식’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지난 4세기 동안 거의 혁명에 가까운 성과를 이뤄 낸 과학공동체를 보면 그 구성원들은 다른 사람의 연구성과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즉시 습득하면서 동시에 자기의 독창적 성과물을 내놓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과학공동체에서 논의됨으로써 다시 공동체의 성과가 되는 것이지요. 과학에는 국가나 민족의 구분이 없어요. 집단적 지성의 정보 공유와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바로 여기서도 실현되는 것입니다.

▽김〓교수님께서는 자본주의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미래의 경제는 정보와 지식이 자유롭게 교환되는 시장경제라는 생각이시지요.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드러난 자본주의의 폐해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계층간 국가간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레비〓자유란 민주정치 체제에서 고무되기도 하지만 더욱 꽃을 피우는 것은 경제분야에서입니다. 자유경제 체제에 의해 조절되고 구현되는 집단적 지성은 그래도 사회주의 체제의 계획경제에서보다는 훨씬 낫지요. 한국에도 빈부격차 실업자 문제 등은 있지만 지금 자유가 없는 많은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경제는 훨씬 나은 형편이 아닙니까.

제 주장의 핵심은 경제적 자유와 다른 형태의 자유를 분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식의 자유,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경제에서의 자유주의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새해 석학 대담
- 美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
- 美 동아시아 전문가 제럴드 커티스
- 美 한반도 전문가 김영진 교수에 듣는다
- 美 철학자 리처드 로티 교수
- 佛 피에르 레비교수-김동윤교수

▽김〓자본주의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인간 정신의 구현이 상충하지 않는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자본주의, 더 나아가 정보자본주의가 과연 교수님께서 꿈꾸는 그런 계몽적 가치를 구현할 기회를 가져오는가에 대해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오늘날 디지털 사회의 현실은 교수님께서 제시한 비전과 많은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지요.

▽레비〓집단적 지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삶은 그만큼 풍성해집니다. 정보자본주의는 바로 이 차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자본주의는 마치 집단적 지성의 몸과 같습니다. 물질을 거부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신은 몸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정보자본주의는 전쟁에도 반대합니다. 정보자본주의는 인류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구성하지요. 예컨대 지구촌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면 주식시장이 폭락하지요. 과거의 자본주의는 무기를 팔았지만, 새로운 자본주의인 정보자본주의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합니다.

▽김〓사이버 스페이스를 말씀하시면서 세계적 차원의 법과 정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시는데, 이를 보면 디지털과 사이버 문화를 완전히 인간과 테크놀러지의 결합의 관점에서만 보시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점이 미국인들과 달리 교수님은 여전히 유럽 계몽주의 정신에 뿌리를 둔 프랑스인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레비〓십여 년 후 세계적 차원의 법과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은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 운동은 세계적 자본주의와 보편적 법이 균형을 갖추는 데 필요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차원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와 법이 파편화돼 있다는 것입니다. 법을 바로 세계적 보편적 차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컨대 생태계 문제, 사회적 문제, 고용의 문제 등이 모두 보편적 세계적 문제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세계적 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지요. 과학 기술과 사이버 스페이스도 물론 세계적입니다.

중요한 점은 정치적 차원과 법체계가 지금의 큰 흐름을 못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낙관적입니다. 왜냐하면 세계 차원의 사이버 문화나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문제들을 ‘의식’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김〓교수님께서는 세계적 보편적 차원의 법과 정부가 세워질 때 인간이 생물학적 진화를 관장하고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십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생물학적 진화를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기적인 인간이 그런 막대한 힘을 가질 때 생태계에 대해 윤리적 대응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레비〓생태계를 잘 조정하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컴퓨터 인터넷의 조작을 통해 생태계를 관찰하고 조정할 것입니다. 사이버 문화란 인간의 잠재성 또는 가상성이 결정적으로 구현되는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까지 인류는 자기 종(種)에 대해서만 책임을 가졌지만, 앞으로는 모든 종과 생명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단지 그것은 생명을 존중한다거나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모든 생명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피에르 레비 교수

▷1956년 튀니지 출생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석사(과학철학 전공)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EHESS) 사회학 박사

▷프랑스 그레노블(Grenoble) 정보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스위스 뉴로 랩(Neurope Lab) 공동설립

▷현 캐나다 퀘백대 사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국내에 소개된 저서:‘지능의 테크놀로지’(철학과현실사), ‘사이버 문화’(문예출판사), ‘디지털 시대의 가상현실’(궁리)

○김동윤 교수

▷프랑스 프로방스대 문학 박사(신화서사·역사

소설 전공)

▷현 건국대 인문학부 교수

▷현 한국영상문화학회 이사

▷레비 교수의 ‘사이버 문화’(문예출판사) 번역

<정리〓김형찬기자>khc@donga.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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