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명현/부실기업 회사채 인수 ‘허와 실’

입력 2001-01-06 19:50수정 2009-09-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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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가운데 새로운 채권의 발행을 통한 자금상환이 어려운 기업들의 회사채 80%를 사들여 자금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로써 당장 금융시장이 붕괴될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산업은행이 인수할 20여조원에 이르는 회사채가 부실화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게 됐다.

이번 조치는 자금시장에서의 신용경색 해소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추구해온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개혁이라는 명제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즉, 현 경제팀이 누누이 강조해 온 시장원리에 의한 기업구조조정 원칙을 정부 스스로 다시 한번 뒤집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여신결정은 은행 스스로 하는 것이며 시장에서 버림받은 부실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시장원리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경제에 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책은 실질적으로 공적자금과 다름없는 재정자금으로 부실기업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 이상이 아니다. 지난 2차 부실기업 퇴출조치 당시 유예판정을 받았던 기업들과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현대전자 등이 우선 수혜기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업여신 결정은 은행 스스로▼

만약 이들 기업이 부실화되면 산업은행은 물론 회사채를 보증한 신용보증기금의 동반 부실이 우려되며 또 정부의 독려 때문에 할 수 없이 회사채 매입에 같이 참여한 채권은행들의 부실 또한 늘어날 것이다.

이 경우 산업은행과 채권은행들의 부실은 또다시 공적자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을 통하여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의심스러운 기업의 회사채를 정부 주도로 되사주는 것은 향후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마비상태에 빠진 자금시장에서의 신용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별달리 없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향후 경기하락과 맞물려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 자금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으로 일단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안 기업들을 괴롭혀온 심각한 자금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기업의 연쇄부도로 금융시장이 마비되고, 그 여파로 실물시장도 크게 손상될 수 있다는 정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비상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조치가 신용경색을 완화해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불가피한 대책이라면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세심한 실행방안의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 실행이 제대로 될 수 있는 유인이 제공되어야 하고 또 생존 불가능한 부실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여야 할 것이다.

우선 부실기업 회사채의 80%를 일률적으로 인수하는 방식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마구잡이 인수로는 퇴출되어야 할 부실기업들도 회사채 대금의 20%만 상환한다면 별다른 자구노력 없이도 버틸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부실기업의 구조조정노력을 지연시키고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일률적인 비율의 회사채 인수 대신에 기업 스스로의 자구노력과 연계시켜 회사채를 사주는 방안 등이 강구되어야 한다. 부실기업 대주주의 사재출연, 노조의 구조조정 동의 등 기업 스스로의 구조조정 노력 정도에 따라 회사채 매입 비율을 달리하여야 할 것이다.

▼자구노력 없는 지원 효과없어▼

또한 독자생존이 어려운 부실기업에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배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자금 및 회사채시장 기능의 마비로 인해 독자 생존이 가능한 기업과 생존이 의심스러운 기업 모두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회생 가능한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번 대책의 성공은 옥석을 제대로 구분하는 노력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번 조치는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내려진 극약처방이다. 가능한 한 피해야 하는 게 독이지만, 독도 잘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금융시장의 치유를 위한 노력에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조명현(고려대 교수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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