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사람들]'안티KBO사이트' 만든 이광민씨

  • 입력 2000년 12월 28일 11시 49분


'프로야구의 진정한 주인은 야구팬이다.'

올 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선수협 파동은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야구팬들은 선수협 대표자 6명이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된 20일 오후부터 가상공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선수협 지지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안티KBO사이트(www.antikbo.wo.to). 안티KBO사이트는 사건발생 약 4시간 후인 20일 오후 7시에 오픈했다.

그후 안티KBO사이트에는 선수협을 지지하는 야구팬들의 글이 1분당 2~3개씩 올라올 정도로 북적대고 있다. 임시로 받은 게시판의 용량이 부족해, 다른 게시판을 하나 더 붙인 상태.

야구팬들은 안티KBO사이트에서 자발적으로 '검은리본(▶◀) 달기' '선수협지지 모금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동아닷컴에서는 안티KBO사이트를 만든 이광민씨(27·학원생)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이씨는 "말한마디 실수해서 야구팬들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수 있다"며 대면 인터뷰는 극구 사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안티KBO사이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올해초 63빌딩에서 있었던 선수협 총회장에서의 모습과, 그후 몇달간 선수들의 생활을 다른 팬들에게서 직접 전해들었습니다. 그때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의식이 깨어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팬들이 뒤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이번 2차 선수협 파동도 1차때와 마찬가지로 힘든 싸움이 될것 같았습니다.

물론 1차때도 많은 팬들이 도움을 주었지만 그 당시는 팬들간의 연계가 부족했습니다. 팬들을 연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자연스럽게 홈페이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안티KBO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와 안타까움을 느낄때는.

"아직도 야구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 점이 보람이라면 보람이겠지요. 안타까운 건 너무 개인감정에 치우쳐 욕설과 인격모독성 글을 올리는 팬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게시판 아닙니까? 선수협 선수들에게는 격려를, 비선수협 선수에게는 선수협에 가입하도록 용기를 북동아 주는 글을, 구단과 KBO에겐 욕설이 아닌 따끔한 비판을 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폐쇄까지 언급한 KBO나 구단에 대한 생각은.

"프로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겁니다. 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죠. 프로야구의 주인은 구단과 KBO가 아닌 바로 팬들이며,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들이 모여서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구단과 KBO는 그 뒤에 서있는 조력자입니다. 선수와 팬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보다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이죠. 구단과 KBO가 프로야구의 주인은 자신들이 아니라 팬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이번 사태는 쉽게 해결된다고 봅니다. 선수협의회의 설립은 대다수의 팬들이, 바로 프로야구의 주인들이 원하는 사항이니까요. 현재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의 행동에 대해서 직장폐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건 말도 안된다고 봅니다."

-반대로 선수협에 대해서는.

"선수협의 설립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프로야구 선수계약서는 일명 '노비계약서'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 연봉조정신청에서 선수들이 단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지요. 이게 다 선수들이 구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라는 걸 반증하는 겁니다. 저는 이런 약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선수협 설립의 목적이라고 봅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활동기간이 5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라면 5년동안 평생동안 쓸 생계비를 모을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오직 야구가 좋아서, 아니 야구말곤 할줄 아는게 없어서 야구를 한다고 보더라도, 그들이 생계걱정없이 편한 마음으로 야구기술을 향상시킬수 있길 바랍니다.

그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한다면 팬들은 더 질좋은 야구를 볼 수 있고, 그들이 수준높은 플레이를 보여주면 관중수는 자연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관중이 늘게되면 그게 곧 구단과 KBO의 이득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호성 이승엽등 한국프로야구 간판스타들에 대한 비판이 거센데….

"이호성 선수는 지난 겨울 반선수협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반선수협의 편이구요. '온건파'라고 하지만 그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거려줄 팬은 없습니다.

이승엽선수의 경우는 침묵하는 경우죠. 침묵하는 다른 선수도 많은데 이승엽선수가 집중포화를 맞는 이유는 그가 바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만큼 실망도 커지는 것이죠.

안티KBO사이트에 인신공격성 글이 올라오는 것은 저 또한 아쉽습니다. 이들이 용기를 내어서 선수협에 가입할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선수협 파동의 올바른 해결방향은.

"구단과 KBO측에서 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에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선수협의 사단법인화는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KBO나 구단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으니까요."

- 만약 선수협파동이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장기화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팬들의 선물'과 보조를 맞추어 선수들에게 미약하나마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겠지요. 1차파동 때와 같이 KBO앞 가두행진을 벌일수도 있고 불매운동을 할수도 있습니다.

선수들 뒤에는 항상 팬들이 존재함을 KBO와 구단에게 알려주는데 힘쓸 겁니다"

-야구팬의 입장에서 볼때 한국프로야구에서 시급히 고쳐져야 할 문제점은.

"우선 승리지상주의를 버려야겠죠. '기록 만들어 주기' 추태도 없어져야 하구요. 팬들의 구장내 오물 투척도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경기가 끝난후 산더미처럼 쌓인 오물을 보면 씁쓸해 집니다. 또 비위생적인 화장실등 팬들이 야구를 외면하게끔 만드는 외부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프로야구는 팬이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팬들을 위한 재미있는 야구, 청결한 구장시설, 성숙된 관전문화, 모두 변해야 할 사항이지요."

-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과 선수가 있다면.

"전 부끄럽지만 삼성 라이언즈의 팬입니다. 왜 부끄러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부끄럽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LG트윈스에서 해태 타이거즈로 옮긴 최익성 선수입니다. 타석에 선 모습에서 근성이 느껴지거든요. 전 근성이 느껴지는 선수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광민씨는 현재 천리안 야구동호회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야구광이다. 원래 컴퓨터를 좋아했고, 지금도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어 안티KBO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그다지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그는 안티KBO사이트가 하루빨리 문을 닫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의 바램대로 선수협과 구단이 팬들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여 하루빨리 대화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최용석/ 동아닷컴 기자 duck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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