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선대인/‘예산심의’ 짜고 치나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8시 48분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원내총무는 24일 새해 예산안에 대한 합의사항을 발표하면서 “민원성 지역구 사업은 최대한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국회 예산결산위 간사인 민주당 정세균(丁世均),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의원은 계수조정작업을 마친 뒤 “침체에 빠진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당이 예산심의 과정에서 주고받은 문건을 보면 이런 다짐이 ‘눈속임’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한나라당 쪽을 보자.

한나라당은 그동안 여러 차례 ‘호남지역 편중예산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한나라당 예결위원회가 24일 만든 ‘한나라당 예산증액 조정내용’에는 영남지역 사업예산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가득했다. 대구교육대 기숙사설계비와 대가야 역사테마공원 조성, 창원 F3국제자동차 경주대회, 양산문예회관 건립지원 예산 등 증액요구 예산의 80% 이상이 ‘영남 편중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

민주당 쪽 역시 마찬가지.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요구를 검토해 ‘2001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만들면서 광주시 우회도로, 장항∼군산 철도, 광양항 동측 연결도로 사업 등 당정협의 과정에서 미처 반영시키지 못했던 호남지역 민원사업들까지 슬쩍 끼워 넣었다.

이렇게 여야가 사이좋게 선심성 지역사업 예산을 나눠 챙기다 보니 SOC 사업예산이 크게 늘어났다. 악화된 경제 사정을 감안해 국민의 세 부담을 줄이겠다는 당초의 약속은 빈말이 된 셈이다.

정치권에선 이를 해마다 되풀이돼 온 ‘관행’이라고 설명한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서나마 야당의 민원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반론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의원들의 생색내기 사업예산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또 다시 혹독한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국민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선대인<정치부>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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