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잘 나가는 자서전은…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9시 48분


독일 외무장관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 영국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 현각스님의 ‘만행’…. 이 책들은 요즘 서점가의 든든한 스테디셀러다. 그 공통점은 자전적 에세이 혹은 자서전이라는 점.

최근 이런 자서전류의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서점엔 ‘인물’ ‘휴먼스토리’라는 장르를 따로 만들어 놓았을 정도다.

자서전이라고 하면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의 책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얼마 전에 나온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노신영 회고록’ 이 그렇다. 10여년 전 출간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도 마찬가지.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보통 사람들의 자서전도 나오고 있다. 평범하지만 역경을 헤쳐나간 감동을 주는 삶을 소개한 책들이다. 최근 2년 사이 선보인 자서전으로는 가발공장 여공에서 하버드대 대학원생이 된 서진규씨의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삼미그룹 부회장에서 롯데호텔 웨이터로 변신한 서상록씨의 ‘내 인생 내가 살지’ 등도 그러한 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사람들은 TV 등을 통해 그 전부터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들이다. 요즘엔 아예 모르는 민초들의 자서전들도 나오고 있다. 출판사 ‘삶과 꿈’은 올 한 해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 세 권을 냈고 곧 여섯 권을 더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달 여기서 발간된 무학자(無學者) 농부 유병천씨의 ‘황새와 뱁새’의 경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출판문화에서 의미심장한 징후다. 이는 개개인의 사소한 삶의 이야기나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 사회문화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동안 무시돼 왔던 작은 것들이지만 이를 통해 역사와 시대를 들여다 볼 때 그 모습은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개인의 진실한 삶은 감동을 준다. 그것을 다룬 자전적인 글 역시 감동을 준다. 따라서 자서전은 앞으로 각광받는 출판 장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남에게 대필을 시키거나 정치 홍보용으로 활용해선 안된다는 사실이다. 삶은 진실할 때 감동을 주는 법이기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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