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박소현, "이제는 연기자로도 인정받겠어요."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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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출연 제의가 왔을 때 그녀는 망설였다. 자칫 그동안 공들여 쌓은 탑을 허물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 주위에서도 "잘 나가는데 뭐하러 그런 역을 하냐"라고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출연을 결심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MC겸 연기자인 박소현(29)은 최근 "진짜 연기할 맛 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그녀는 요즘 인기 높은 SBS 수목 드라마 <여자만세>(오세강 연출, 박예랑 극본)에서 난희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난희는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는 부잣집 딸. 집안의 위세를 보고 결혼한 남편 변우민의 옛 애인 채시라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딴죽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한 마디로 드라마에서 갈등과 사건만 일으키는 전형적인 악역이다. 그동안 밝고 화사한 모습으로 사랑받던 박소현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예능 프로그램, 교양 프로,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여성 전문 MC로 인기 높은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 좋은 이미지에 흠이 갈 이런 역할을 맡은 걸까?

"연기자로서 제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죠.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귀여운 그런 인물이 아니라 제대로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만한 그런 역할이라서 맡겠다고 했어요."

다시 말해 '연예인 박소현'이 아니라 '연기자 박소현'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나와 촉망받던 발레리나였던 그녀가 부상 때문에 방송으로 진로를 바꾼 것은 93년. 리포터로 방송활동을 시작했고, KBS 2TV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이병헌의 상대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종합병원> <신비의 거울 속으로>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사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능력을 발휘한 쪽은 프로그램 진행.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과 프로그램 내에서의 순발력, 깔끔한 말솜씨와 약간 하이 톤인 경쾌한 음색은 그녀를 방송가에서 손꼽히는 여성 전문 MC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이 30을 앞두고 한동안 발을 끊었던 연기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방송 진행자로서 박소현의 최대 강점은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친근함과 붙임성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 장점이 오히려 이미지가 단조롭다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예전 드라마를 함께 했던 어느 PD는 사석에서 "연기자로서 노력하는 자세나 센스는 좋은데, 분위기가 단조롭다. 늘 착한 역할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아쉬움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여자만세>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늘 귀엽고 착한 여자'만 연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극중에서 그녀는 채시라와 변우민을 정말 얄미울 정도로 들볶는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가 없다는 것. 대개 아무리 악역이라도 "저런 상황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되기 마련인데, 그녀가 연기하는 난희는 시청자에게 그런 동정을 받는 것을 애초부터 포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극중에 선배인 채시라의 뺨을 매몰차게 때리기도 했다.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 함부로 못하는 그녀로서는 예상도 못했던 일.

"시라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 때 정말 신이 났어요. 남을 때리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이제는 나에게 이런 연기도 주문하는구나'라는 즐거움이죠."

드라마 속 역할이 자칫 MC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에이, 요즘 시청자들이 어디 60년대 라디오 드라마 듣던 분들인가요? 극중 모습하고 실제를 구별 못하게….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제 연기가 정말 좋았다는 것이니 더 좋죠."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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