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불황여파 점집 열풍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41분


‘정신없이 터지는 금융사고와 예측할 수 없는 정부정책. 도대체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회 전반에 팽배한 불확실성으로 심리적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철학원(점집)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줄 잇는 철학원 찾기〓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철학원을 운영하는 김모씨(48)는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예전에 비해 1.5배나 늘어난 하루 20여명의 손님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어 철학원은 항상 손님들로 가득하다.

김씨는 “회사가 곧 구조조정을 시작하는데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역술인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가 된 듯하다”며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역술인협회 박형용(朴亨用·57) 사무총장은 “매년 꾸준히 100여명의 역술인이 협회에 가입하고 있다”며 “과학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점’은 불확실성을 보완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수단도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을 반영하듯 인터넷 역술사이트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미 300곳에 이르는 이들 사이트는 300여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역술 사이트인 사주닷컴(www.sazoo.com)의 경우 올해 상반기 하루 350여명씩 가입하던 회원이 최근엔 600여명으로 급증했다. 방문자수도 하루 1만∼3만여명까지 늘어난 상태.

한 벤처기업가는 “며칠 전부터 인터넷 역술사이트에 돈을 내고 메일로 ‘오늘의 운세’를받아보고 있다”며 “급변하는 시장상황 속에서 운세에 따라 몸가짐과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나를 보면 비참한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역술인은 컨설턴트?〓철학원과 인터넷 역술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의 궁금증은 크게 주식 취업 궁합 등 세 가지. 최근엔 ‘점’을 재미나 심리적 의존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분석하는 도구로까지 이용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미래유망직종 사업확장여부 상호변경 등을 전문적으로 상담해주는 역술인 진모씨(51)는 “경제불황이 이어지면서 찾아오는 사업가나 직장인이 부쩍 늘었다”며 “기업컨설턴트로서 사업상의 문제점을 역술적 차원에서 진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역술로 본 주간증시’를 연재하는 G증권 종합금융팀의 도모씨(38)는 “증권투자로 수익을 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사주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며 “역술적으로 때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과 절대로 주식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말이 되면서 신년소망을 담은 부적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한 철학원에서 만난 유학생 김모씨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국유학을 갔다왔는데 국내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며 “마음의 안정을 위해 부적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주부 송모씨(40)는 “남편이 내년에 회사를 나와 개인사업을 할 계획이어서 남편 자동차에 부적을 붙였다”며 “주위에는 아이들을 위해 부적을 구입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남편과 관련한 부적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철학원을 운영하는 한 역술인은 “경제가 어려우면 동서남북 방향에 대한 운세를 묻는 질문이 많다”며 “채권자와 채무자들 사이에 어디로 가야 상대를 찾거나 피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서글퍼진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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