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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11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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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조깅하던 외과의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뛰어 들어 인공호흡으로 생명을 구해 놓았다. 다시 조깅을 하던 그는 또 다른 사람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이번에도 생명을 구했다. 같은 일은 수없이 되풀이됐다. 주위에는 아직도 여러 사람이 물에 빠져 아우성치고 있었던 것이다.
외과의사는 옆에 있던 생화학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생화학자는 골똘히 생각만 하고 늑장을 부리는 것이었다. “왜 도와주지 않느냐”는 외과의사의 말에 생화학자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호수에 빠지는지 그 이유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임상의사의 사명은 고통받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공헌하는 것이지만, 기초의학자의 사명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질병의 근원을 캐는 연구 축적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우화다.
한국의 경우 기초의학은 의학계의 이른바 ‘3D 업종’에 속한다. 대부분의 의대 졸업생들이 고소득을 올리는 임상의사를 지원하고 있고, 기초의학은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 지망자의 부족으로 기초의학 교육에 필요한 인력조차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 등의 의학계와는 크게 대조를 이루는 현상이다.
일본은 기초의학에 종사하는 인력이 참으로 풍부하다. 따라서 임상의사의 공급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동결시킬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우수한 생물의학 논문이 엄청나게 많이 발표돼 기초의학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논문들이 갖고 있는 고부가가치의 지적 소유권은 바로 일본의 국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노벨의학상 수상자의 대부분이 기초의학자들이다. 그리고 기초의학 연구자로서 국립연구소에 근무하는 것은 공공근로(우리나라로 치면 군 복무에 해당함)로 인정해 준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의 의학계가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기초의학을 국가적 차원에서 배려하는 의학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도 기초의학을 조기에 육성할 수 있는 의학정책이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초 의학자를 연구 인력으로 활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임상경험이 전혀 없는 데도 군병원이나 일선 부대의 군의관으로 복무하도록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창 지속적으로 연구에 몰두해야 할 젊은 우수인력을 사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초의학 육성을 위한 조속한 정책수립을 촉구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에도 노벨평화상을 뛰어넘어 의학부문에서도 노벨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다.
김우현(전북대 의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