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타워]IMT-2000 국산화 '초보'…기술종속 우려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16분


사업자 선정을 눈앞에 둔 3세대 휴대통신 IMT―2000이 각광받는 이유는 명료하다.

한국경제를 일으킬 새로운 동력(動力)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IMT―2000은 2010년까지 38조원 규모의 생산유발과 42만여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10년 뒤엔 국민 대다수인 3840여만명의 손에 IMT―2000 단말기가 쥐어져 있을 것이다. 인터넷 콘텐츠와 유무선 장비, 정보기기 등 산업 구석구석에 미치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도 폭발적이다.

경제적 효과 이외에 이용자들은 TV보다 선명한 동영상을 손바닥에서 볼 수 있고 수백권의 책 내용을 순식간에 주고받는 등 엄청난 ‘정보의 부가가치’를 실감할 것으로 보인다. IMT―2000이 초래할 경제, 문화적 충격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컬러TV 방영에 비견될 만큼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IMT―2000은 ‘국가적 사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제적 산업기술적 목표가 설정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부와 민간의 공감대가 마련되지 않음으로써 또 한차례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비스 사업자들이 거액의 시설투자와 분담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초기단계부터 지분의 20∼30%를 외국기업에 매각키로 한 것도 ‘국부 유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 정갑영교수는 “IMT―2000 사업은 엄청난 투자와 기술이 드는 만큼 디지털경제를 촉진하는 한국경제의 견인차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사업이 외화내빈의 ‘외국기술 잔치’에 그쳐서는 안되며 국가경쟁력 강화와 기술선진국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

▽기술개발 ‘속빈 강정’ 우려〓2002년 IMT―2000 상용화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기술 국산화. 이는 비동기식이나 동기식 모두 마찬가지다. 세계 최강의 상용화 기술을 자랑하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단말기조차 아직까지 국산화율이 40% 수준에 불과한 실정. 교환기나 기지국장비로 가면 국산화율은 30% 이하로 더 떨어진다. CDMA에 대해서는 원조국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속을 들춰보면 외국기술의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셈.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취약한 IMT―2000 장비의 국산화율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비동기식 기술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대부분의 국내 업체들은 이 부문의 기술력 확보에 자신감이 없다. 이 경우 업계가 내세우는 장비 국산화에 이은 세계진출은 외국기술을 포장한 ‘대리 판매’에 그칠 수도 있다.

▽휴대전화 강국의 실상〓국내 휴대전화 인구는 2600만명에 이른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 소비로 따지면 세계최고 수준인 셈. 그러나 국제적 위상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핵심기술과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으로 경쟁 체제가 도입됐지만 사업자들의 국제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단말기 보조금이 폐지된 6월까지 한해 500만대 이상의 공짜단말기가 남발되면서 3조원 가까운 외화가 부품수입과 로열티로 해외로 빠져나갔다.

정부와 기업들이 자랑하는 CDMA 수출도 사실상 ‘속빈 강정’이다. 올해 CDMA수출은 280억달러에 달했지만 ‘돈되는’ 시스템 수출은 거의 없고 대부분 단말기에 치우쳤다. 단말기 수출단가도 제조원가인 20만원 안팎에 불과해 ‘남는 장사’가 못됐다는 평가다. 호남대 이남희교수는 “IMT―2000 조기상용화의 이점을 살려 단말기 외에 시스템의 수출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중복과 과잉투자 위험성〓지난 3년간 휴대전화 시장에서 5개 사업자가 과열경쟁을 벌이면서 기지국 중복건설에만 1조원이 넘는 돈을 낭비한 것으로 정보통신부는 추정한다. 98년부터 올 3월까지 지급한 보조금도 6조5934억원에 이른다.

인수합병으로 5개 휴대전화사업자가 3개사업자로 줄어든 가운데 다시 3개 IMT―2000 사업자가 등장함으로써 시장이 과열될 소지도 높아졌다. 이미 기존 사업자들은 유사 IMT―2000서비스인 2.5세대 ‘CDMA 2000 1X’를 위해 1조원 안팎의 투자에 나서 동일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성균관대 정태명교수는 “사업권을 따더라도 생존을 위해 부단한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며 “중복투자와 국부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통신사업 육성 정책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통신강국 도약의 발판인가〓공동망 구축이나 기지국 공동사용 등 중복투자를 과감히 없애는 기업간 협력, 정부의 정책이 필수적이다. 자본과 기술을 앞세운 외국 사업자와의 전면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사업에는 실패하더라도 사업권을 팔면 투자금액 이상을 뽑을 수 있다는 안이한 발상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다.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PCS 서비스처럼 적자투성이로 실패하더라도 피인수합병으로 투자원금 이상을 회수하는 ‘머니게임’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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