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班 門 弄 斧(반문농부)

  • 입력 2000년 11월 28일 18시 48분


班 門 弄 斧(반문농부)

弄―가지고 놀 농 斧―도끼 부 謙―사양할 겸

遜―겸손할 손 轍―수레바퀴 철 匠―장인 장

요즘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세상에서는 마냥 謙遜(겸손)만 떤다고 미덕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고 홍보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오줌싸게 수레바퀴 당하듯(螳螂拒轍·당랑거철) 함부로 날뛰어서도 곤란하다.

속된 표현에 ‘孔子 앞에서 문자 쓴다’는 말이 있다. 제 능력 요량 않고 함부로 재주를 뽐내는 것을 탓하는 말이다. 謙遜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 함께 들어 있다. 班門弄斧가 그런 뜻이다. ‘班氏의 문 앞에서 도끼를 놀린다’는 뜻이다.

公輸班(공수반)은 춘추시대 魯나라의 名 匠人(장인)이다. 어떤 나무토막이든 그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國寶로 변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났다. 워낙 技巧(기교)가 뛰어나 도끼놀림이 귀신같고 대패질은 아지랑이 춤추듯했다.

그 때 젊은 木手 하나가 있었다. 조금은 技藝(기예)를 익혔는데 도무지 眼下無人(안하무인)이었다. 하루는 자신의 작품 몇 점을 가지고 나타나 한 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것을 보시오. 신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작품입니다.’ 하면서 도끼를 직접 꺼내 가지고는 현장에서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서 있던 곳은 公輸班의 대문 앞이었다. 그러자 구경꾼 중 하나가 가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봐, 젊은이. 어디 등 뒤를 한 번 돌아보시지. 그게 누구 집인 줄 아는가? 바로 천하의 名匠 公輸班의 집이라오.’

집안을 돌아보고 난 그는 망연자실했다. 귀신도 무안해 할 정도의 재주, 精巧(정교)의 極致(극치)를 다한 조각들…. 자기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技藝가 아닌가. 젊은이는 그만 홍당무가 되어 머리를 떨군 채 자리를 뜨고 말았다.

明나라 말기에 梅之渙(매지환)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한 번은 천하 대시인 李太白의 무덤을 지나게 되었는데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의 墓碑(묘비) 위에다 제 딴에는 文才(문재)깨나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함부로 싯구를 새겨 넣었던 것이다. 불쾌한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으로 자신도 한 수를 적어 넣었다.

采石江邊一堆土(채석강변일퇴토) 채석 강변의 한 무더기 흙이여

李白之名高千古(이백지명고천고) 이백의 이름 천고에 드높도다

來來往往一首詩(래래왕왕일수시) 오가는 사람마다 한 수 씩 남겼으니

魯班門前弄大斧(노반문전농대부) 노반의 문전에서 큰 도끼 자랑하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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