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헤쳐 모여’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5분


‘헤쳐 모여’는 군대 용어다. 우르르 집합한 사병들에게 흩어졌다 일정한 형태로 다시 모이도록 하는 것, 이를테면 2열 종대든 3열 횡대든 틀을 지어 대오를 정비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이념적 동질성이나 동일한 목표 지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당(作黨)은 여러 사람이 떼를 짓거나 동아리를 이루는 것이지만 ‘네 놈들이 작당을 해서 누굴 해코지하려 드느냐’는 쓰임말에서 보듯 그 말뜻은 매우 부정적이다. 정당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하는 단체’다. 단순한 ‘헤쳐 모여’나 ‘작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근대 정당제도를 도입한 지 반세기가 지났건만 우리 정당의 성격은 아직 모호하다. ‘작당’이라고 할 수까지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정치 이념이나 목표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 정치가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나 정치 개혁이 늘 말잔치에 그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여당 야당을 가릴 것 없이 피(彼) 아(我)가 뒤죽박죽 섞여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없는 것에도 모자라 심지어 ‘적과의 동침’을 하는 판인데 무슨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단 말인가.

▷미국 민주당의 역사는 17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역사와 같이 하는 셈이다. 공화당은 1854년에 출범했다. 영국의 보수당은 1832년, 노동당은 1906년 이래 같은 이름이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 정당은 정당이랄 것도 없다. 특정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만들었다가 실패하면 없애거나 이름을 바꾸기 일쑤였다.

▷오로지 표를 얻기 위한 지역당으로서는 바른 정당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의원의 정계개편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정치 이념과 목표가 같은 정치인들이 권력과 지역을 뛰어넘어 ‘헤쳐 모여’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보수와 진보의 양당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다면 우리 정당도 걸핏하면 간판을 바꿔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DJP 공조’에 연연하고 있으니 원….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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