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강수돌/‘삶의 질’ 관점서 근로조건 살펴야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5분


‘제2의 IMF’가 온다는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진 뒤 약 3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토론이 전개됐다. 사치나 과소비가 문제라는 말이 있었고 근로윤리가 해이하거나 노조가 너무 강경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부정책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었고 저효율 고비용 경영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 제기 자체가 옳음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그것은 경제와 사회, 기업과 노동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바라보는 기본적 관점, 즉 패러다임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피상적인 문제 제기와 임기응변적인 방책들만 난무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 문제야말로 진정한 펀더멘털인데도. 경쟁과 분열이 아니라 연대와 공존, 경쟁력이 아니라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새 패러다임 논의는 항상 뒤로 밀렸다.

이 점에서 23일자 A26면에서 올해에만도 5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2000억원이 넘는 임금을 받지 못해 겨울나기를 막막해 하며 삶의 의욕마저 상실한 모습을 보도한 것은 돋보였다.

게다가 이런 노동부 통계가, 부도난 대우자동차 등의 협력업체와 하청업체의 체임 부분을 빼고 있다는 지적, 또 건설 일용직 등 비정규직 문제의 환기는 현실의 실상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또 퇴출기업 발표와 관련, 해외매각 대상 기업 직원과 퇴출에서 제외된 기업 직원의 대조적인 표정을 클로즈업한 사진(3일자 A8면), 생계형 주부취업에 관한 보도(8일자 A30면), 불황 속에 버려지는 아동문제 기사(20일자 A29면) 등은 인상적이었다.

또 22일자 사설에서 ‘칼을 뽑는 것보다 바르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각에서 공직사회 사정의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를 꼬집은 것, A29면에서 지자체의 예산낭비에 대한 분석은 신선했다. 나아가 ‘지구―자연―인간’이라는 기획기사에서 꾸준히 환경문제를 공론화하며 대안을 보여준 것은 좋은 시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도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사도 많았다. 10월23일 노사정위에서 주5일 근무제가 합의되자마자 다음날 사설은 ‘주5일 근무, 급하지 않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왜 하필이면 지금인가라는 문제와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도 언급됐다. 그러나 주5일 근무제를 이렇게 피상적으로만 봐야 할까? 연대와 협동의 패러다임, 삶의 질 패러다임을 강화하려면 주5일 근무제는 기본적 노동조건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주5일 근무제가 ‘무늬만’으로 그치지 않도록 주문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또 21일자 A1면에서는 ‘노조를 비롯한 이해집단의 이기주의’를 거론하며 경제의 ‘3대 위기’를 분석했는데 마치 대우자동차 노조의 구조조정 동의서 거부가 문제의 핵심인 양 보도한 것은 아직도 노조를 경제의 ‘걸림돌’로 인식하는 한계를 보였다.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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